(사도행전 12:18-25, 아첨에 죽는 어리석음)

헤롯의 작전은 실패했다.
야고보에 이어 베드로를 처형하여 유월절을 다시 한번 정치적 승리의 날로 만들려던 그의 계획은 좌초되었다.
감옥에 잡아둔 베드로가 사라진 것이다.
그가 손에 쥐고 마음대로 가지고 놀 먹잇감이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
그는 예수의 부활 소문을 귀담아들었어야 했다.
예수는 희한한 소문을 남긴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활한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세히 조사했어야 했다.
그는 사실 조사도 하지 않았고, 실증적인 증거를 대조하지도 않았고
그저 정치적으로 어떤 것이 이로운가만 저울질하는 자였다.

그리하여 결국 정치적으로 당하고 만다.
그는 왕으로서 신민들을 정치적으로 판단했다.
마음에 들면 후해지고 약점이 잡히면 완강한 폭압을 휘둘렀다.
어떤 연고인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의 노여움을 샀다.
그러나 두로와 시돈 사람은 헤롯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길을 찾는다.
아첨이다.
즉 정치적 책략이다.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갖은 방법을 다 쓰는 것이다.
마음에 없는 말로 한껏 그를 높이니 헤롯은 좋아죽는다.
그러고 보니 헤롯보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한 수 위다.
결국 정치적으로 놀아난 것은 헤롯이다.
헤롯은 신으로까지 승격되었다.
아, 그걸 믿다니.
이 어리석은 헤롯!
그 아첨에 도취까지 되다니, 이 어리석은 헤롯!

그리고 그는 백성들의 아첨에 놀아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
그를 치기 위해서는 하늘의 번개가 동원될 필요도 없었다.
주변 국가의 군대가 일어날 일도 없었다.
아주 간단했다.
“벌레”면 족했다.
그는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
인간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만물의 대리자!
지구상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만물의 영장!
맞다.
그러나 죄를 지은 뒤로는 어떤 존재보다 천한 자가 되었다.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죄를 짓고 하나님의 벌을 받은 것은 없지만 인간만 그러하다.
그리하여 정직한 자는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시편 22:6)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신인 줄 아는 자는 벌레에 먹혀 죽고,
자신을 벌레라고 고백하는 자는 부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차지한다!

아, 나는 이렇게 헤롯의 어리석음을 마음 놓고 조롱할 수 있는가?
헤롯이 좋아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가?
헤롯이 쓰는 방법을 나는 쓰지 않는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의 칭찬 아닌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지적이요 비난이요 무시 아닌가!
나는 손에 권력이 없을 뿐
그러한 자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화를 내는 것은 ─만만하면 그에게, 아니면 나에게─
헤롯과 똑같지 않은가?

나는 벌레다.
벌레에 먹혀 죽을, 벌레보다 못한 자다!
이것이 죄인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