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2:1-17, 다시 유월절 후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여러 해가 지났을 것이다.
예수께서 언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가 언제 부활하셨는지 사람들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헤롯 왕은 그것을 기억하고 의도적으로 다시금 유월절 기획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예수가 유월절 때 죽임을 당했고 그 다음날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부활한 예수를 대면하지 못한 헤롯으로서는 예수의 부활을 날조된 사건으로 주장할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부활을 믿고 날뛰는 예수 당을 다시 이 유월절에 처형할 계획은
그에게 멋지고 야심 찬 과업이 될 것이었다.

그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우두머리인 사도들에 직접 손을 댔다.
사도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일은 이미 감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고 오히려 예수의 복음은 더욱 널리 퍼졌다.
그런데 이번에 헤롯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이는 일에 성공을 했다.
사도가 아니라 스데반이 첫 순교를 당했었다.
부활을 믿는 이들도 결국 죽는다고 선전할 기회였지만
큰 환난으로 흩어진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다.
종교당국에 의해 주도된 박해는 오히려 예수의 명령과 약속을 이루는 도구가 되고 있었다.
아, 헤롯은 그것을 보고 있지 못하다.
그는 야고보를 죽이는 데 성공하고 아마도 사도들을 싹쓸이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가장 중요한 인물, 베드로에게 손을 댔다.
“무교절 기간”에.
즉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에 다시 한 번 예수의 처형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고 부활은 소문에 불과한 날조 아닌가,
이것이 헤롯의 대전제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유월절 후를 기다리는 밤에 다시 한 번 예수의 부활사건이 베드로를 통해 재현된다!
물론 베드로는 처형당했다가 무덤에 묻힌 뒤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니다.
베드로는 처형장에 끌려갈 것도 없었다.
무덤에 묻힐 일도 없었다.
그는 다시금 살아나 무덤을 열고 밖으로 나올 일도 없었다.
아무리 헤롯이 그를 가두고 죽이려 하고 무덤에 꽁꽁 묻어두려 했을지라도
주께서 그를 이미 구해내셨다.
아니, 베드로를 구출해내는 것이 주님의 목적은 아니다.
그것이 모든 박해 현장에서 주의 목적이라면 예수께서는 스데반도 야고보도 죽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무리 돌로 쳐도, 아무리 칼질을 해도
스데반의 머리는 안 터지고 야고보의 목은 알 잘렸을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목적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불사신으로 살게 하는 것은 주님 나라의 통치에 속하지 않았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의 어떠한 무지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살리시고 주께 나아오는 자를 구원하시는 데에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예수를 처형했던 빌라도의 십자가형 선고도,
스데반의 머리를 터지게 했던 유대인들의 돌팔매도,
그 현장의 자랑스런 증인으로 예수 당의 박해에 앞장섰던 사울의 행진도,
그리고 베드로를 가두어 다시 한 번 유월절 쇼를 감행하려는 헤롯의 정치놀이도
주님의 이 구원의 뜻에 대항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부활했고. 제2, 제3의 스데반은 줄줄이 이어졌고,
사울 자신이 바로 스데반의 뒤를 이을 것이며,
베드로는 그 밤에 유유히 감옥을 나왔다.

그는 굳이 감옥에서 살아날 방도를 구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처형을 앞두고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그의 몸의 죽지 않을 형질의 변화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자신을 죽여 봤자 예수님의 교회는 더욱 든든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것을 헤롯이 어떻게 꺾을 것인가!
아, 헤롯은 자신이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에 틀림없다.

베드로는 주의 사자가 옆구리를 쳐서야 깨어난 다음
감옥을 나와 형제들이 모여 있는 집에 와서 주님의 부활의 능력과 그 뜻을 전하고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베드로는 어디로 갔을까?
그의 이름은 이제 사도행전에서 단 한 번 더 언급되는데,
그는 할례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소집되었을 때에 -거기에 바울과 바나바도 참석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율법 규정의 준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구원받는 것을 확증하였다.
즉 그는 지금까지 하던 일을 계속했음에 틀림없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의 교회를 순방하면서 든든히 세웠고
새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성경적인 지도를 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마가의 어머니 집에 모인 형제들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지만
그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주님의 목적은 베드로의 무탈이나 안전이나 영생불사에 있지 않았다.
그가 계속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그를 이끄셨다.
아, 나는 그 정도로 주님의 일을 일관되게, 전심으로, 아무 일에도 개의치 않고,
눈과 마음을 다른 데 돌리지 않고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