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3,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대로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약속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기다리라는 말씀대로 기다린 뒤에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더욱 극적인 사건이었다.
120여 명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각각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한 것이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각 언어를 들을 수 있는 것에 놀랐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일은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는 기적으로 행해졌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
그것은 주관적으로 그렇게 생각된 것이 아니라 들리고 보이는 현상이었다.
그들만 듣고 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직후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여러 나라의 언어로 말하는 소리를 사람들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히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자들이 기다린 뒤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일은
초자연적인 기적의 현상을 동반했다는 데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는 기적적 현상이 따름으로써만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제자들이 말을 한 내용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말했다!
“하나님의 큰일”이란 무엇인가?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 그리고 무덤에서 일어난 일,
즉 예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일의 의미는 그들이 할 줄 모르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에서만 있다고 할 수 없다.
만일 그들이 그저 평범한 일상회화를 외국어로 했다고 할 때
그것은 그저 기적일 뿐이지 그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만일 평범한 유대인들이 바대와 메대와 메소보다미아 언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것은 얼마입니까, 싸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면
혹시 그들이 외국어 학원의 선전원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성령과 상관이 없다.

그들이 성령을 받은 사실은 외국어 구사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에 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성령이 임하심의 증거다.
그것이 없다면 성령과 무관하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기적적으로 외국어를 통해 말해졌는가 일상의 모국어로 선포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큰일”이라는 내용이 중요하지 그것이 어떤 언어형식으로 언급되었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오늘날도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
오늘, 누가 성령을 받은 것인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자가 성령을 받은 자다.
자신도 모르게 외국어를 방언으로 구사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가 성령의 증거 여부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기적의 여부가 성령의 증거는 아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아니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믿는 일은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은 기적을 동반하지만 어떤 사람의 경우는 평범한 일상처럼 일어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를 믿었는가의 사실 여부다.
그때 일어나는 “하나님의 큰일”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이다.
모든 믿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이다.

나는 성령을 받았음을 무엇으로 입증할 것인가?
무엇보다 내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큰일”을 담대히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사도행전의 묵상으로 성령께서 나를 그렇게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