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1-18, 일을 차례로 설명하고)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우연히, 또는 두 사람이 사전 계획을 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렇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이었다.
이들이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주선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또한 베드로에게 각각 지시하심으로
이들은 사실 준비되지 않은 채,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에 의해 만나게 되었다.
만나고 보니 이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요,
하나님이 얼마나 선한 뜻으로 하신 일인지,
더욱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구약시대부터 이미 나타내신 뜻에 부합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단번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것은 정당한 물음이었다.
왜냐하면 베드로 자신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고,
그것은 율법적으로, 심지어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이상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베드로에게 그러했던 것과 같이 설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였다.

이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의문에 “차례로 설명”해 주신다.
베드로에게도 그러하셨고,
베드로는 설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고넬료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베드로가 “차례로 설명”할 차례다.
그가 그렇게 “차례로 설명”하니, 그 설명을 들은 사도들과 형제들이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만일 그들이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그들은 베드로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들은 베드로의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다.

그 설명의 중요성을 베드로가 자신의 설명에서 강조했다.
그는 ‘고넬료가 이방인이라는 것이 뭐가 문제냐.
한 사람이라도 더 성령을 받으면 좋은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결과론적으로 자기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가 설명한 것은 주님의 “설명”이다.
베드로는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과정에서 그냥 자기확신에 이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주의 말씀이 생각났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것은 베드로가 꾸며낸 생각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다.
즉 주께서 그 순간 그에게 전에 설명하셨던 것을 다시 설명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이것이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즉 ‘하나님이 이렇게 분명하게 설명해주셨는데 내게 불분명한 게 어디 있겠느냐.’
그리고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즉 ‘하나님께서 설명하신 대로 일이 일어났도다.’

아, 설명이 이렇게 중요하다.
복음 전도는 곧 복음의 설명이다.
복음을 듣지 않으면 믿지 못한다.
즉 복음의 설명이 없으면 믿지 못한다.
내게 복음을 설명해주신 하나님과 전도자들과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역할로 나도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가 이 설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어제, 1월 27일 양부모 상견례는 아름답게 잘 되었습니다.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