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17-33,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로마인과 유대인, 유대교와 신흥 예수교 등으로 대별된다.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으로 차이가 난다.
당시에 이들의 만남은 희귀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이들은 만날 수 있었고 만나야만 했다.

베드로와 고넬료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베드로는 전통적인 유대교에서 벗어나 예수를 믿고 있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
고넬료는 로마인이지만 유대교 신앙을 가졌는데 그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넬료를 부르셨고 베드로도 부르셨다.
이들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주선하셨고 명령하셨다.

두 사람 가운데 예수와 함께 동행했고 그의 부활을 목격했으며 이 시간 그의 사도로서 강력한 사역을 하고 있는 베드로가 더 앞장 선 위치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도 아직은 그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다.
그는 예수께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씀으로
성령을 받고 땅끝의 먼 데 사람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리라는 사명을 수행하고 있지만
과연 그 끝이, 그 “먼 데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 못하다.
그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즉 지금의 유대인들로만 한정하여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고넬료는 이방인이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이스라엘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러면 이방인과의 관계 금지는 해지된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유대인들에게 인정을 받는 자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전통적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의 만남으로 된 것은 아니다.
베드로는 이미 전통적 유대교에서 벗어났다.
고넬료는 유대교를 믿지만 그가 믿는 하나님이 베드로를 만나라고 하신다.
이들은 이제 유대교의 공통점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만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 이후로 서로 무관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는 역사다.

로마인이 사람을 보내어 유대인을 모셔오는 것,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찾아가는 것,
이것은 파격적인 시작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이 예외적으로 보이는 부르심에 순응한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대대로 하실 역사가 시작된다.

베드로는 이방인은 부정하고 더럽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고 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그는 이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다.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지금까지의 상식이나 습관이나 신념을 깨뜨리고 “사양하지 아니하고”, 즉 기꺼이 순종한다.
즉 하나님께서 만나라고 하는 사람을 만난다.
고넬료도 마찬가지다.
그도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으므로 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대했다.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과정은 바로 이러한 여러 유형의 만남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맨 처음에는 복음에 관심을 갖는 유대인들―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물었던―을 만났다.
그리고는 예수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 다음에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믿는) 자를 만난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만났고,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났다.
그 다음은 이제 하나님께서 사울을 부르실 때 뜻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모두 만나게 하실 것이다.

이 모든 만남은 이전 단계에 비추어보면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만일 그래서 그 만남들을 스스로 제한한다면 그는 예수의 증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빌립도, 베드로도, 사울―나중에 바울이 되는―도 이 경계를 훌쩍 넘어선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익숙하지 않은, 적대적인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게 예수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되어 간다.

나에게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익숙함을 넘어서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순종의 문제다.
익숙함은 얼마나 편한가.
내가 잘 아는 사람, 나를 잘 대해주고,
이미 많은 것을 나누었고 공통점이 ―서로 통하는 것이― 많은,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사람…
베드로와 고넬료는 서로 이런 사람이 ―아직―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부름이기 때문에 “사양하지” 않았다.
내가 내 마음대로 사양하는 것, 꺼리는 것, 그것이 문제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양할, 꺼릴 대상은 없다.
이것을 명심하자.

(이 말씀 묵상을 나누시는 교우 여러분,
저희는 내일(1월 27일, 토요일) 혜경이의 예비신랑 부모님을 만납니다.
그들이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어서 저희 마음에 긴장과 부담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저희가 이 만남을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감당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담대하고 진리에 든든히 선 자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만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