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32-43,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

베드로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큰 환난의 때에 성도들을 피신시키고 예루살렘에 끝까지 남았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지켰다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은 복음이 퍼져나가는 중심지, 진원지였다.
먼저 믿은 제자들이 흩어져 나가면서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면
사도들이 그 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우는 일을 했다.
사마리아에서 그런 일이 있었고, 이번에는 룻다와 욥바 이야기가 나온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사역을 했다.

본문에 나오는 두 이야기는 베드로가 어려움 가운데 처한 성도를 돕고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일이다.
이 구절들에서 주어요 주인공은 베드로다.
베드로가 두루 다니다가 애니아를 만나고 도르가를 찾아가고 그들을 위해 치유를 명령하여 병을 고치고 기도하여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한다.
그러나 이 사건들의 행위자는 베드로가 아니다.
베드로는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그는 또한 죽은 도르가를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는 주문을 외운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주 예수께 기도했다.
즉 이 모든 치유와 회생은 예수께서 하신 일이다.
베드로가 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예수께 요청했고 예수께서 그들을 고치시고 살리셨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
베드로가 고쳤고 살렸으니 그가 높여졌는가?
사람들이 그를 믿었는가?
아니다.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은 애니아를 보고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다.
죽은 도르가가 살아난 것을 본 욥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주를 믿”었다.
결과는 사람들이 베드로를 믿은 것이 아니라 주께로 왔고 주를 믿었다.
욥바에서 사람들은 도르가를 살려달라고 베드로에게 간청을 했지만,
도르가가 살아나자 주를 믿었다.
베드로는 자신의 역할을 아주 잘 한 것이다.
그는 예수께 기도하고 예수께서 고쳐주시고 살려주시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것이 복음의 역사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비결과 주술과 마법으로─ 기적을 행하고 자기 이름을 높이며 그 자신을 믿게 하는 것,
이것은 비진리다.
심지어는 그가 주께 기도하여 주께서 표적을 행하셨는데도 그 자신이 주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
이것은 복음의 사역이 아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사실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오류다.
이단의 교주처럼 자신이 신의 행세를 하는 때뿐 아니라,
미묘하게 자신을 드높이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고상하게, 거룩하게, 높이려 하고,
때로는 정반대로 아주 낮추어서 긍휼과 연민을 자아내어 결국 나를 관심의 중심이 되게 하는가!
교만과 함께 결국 자신이 중심이 되는 자기 비하도 거짓 겸손이다.

베드로는 이미 성전의 미문 앞에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을 만났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했고,
이 기적을 보고 놀란 군중들에게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반문했다.
베드로는 애니아를 위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라고 분명히 선언했다.
그의 말 어디에도 마치 그 자신이 권능을 행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불분명한 암시를 섞은 경우가 한 번도 없다.
그는 분명하게, 단도직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밝혔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기적 이후에 사람들이
베드로에게가 아니라 “주께로 돌아오”고 “주를 믿”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만일 자신이 높아진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만일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된다면 사역이 성공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그것은 결국 교만으로 향하고 패망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