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19b-31, 움직이는 사람 사울)

사도행전은 움직임에 관한 책이다.
아마도 이 책에 가장 알맞은 인물은 역시 움직이는 사람인 사울─나중에 바울─일 것이다.
사울은 다소 출신인데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도당을 잔멸하는 데 앞장섰으며 다메섹까지 원정을 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메섹에 다다르기 전에 그는 그의 목적지의 정반대에 이르렀다.
다메섹을 코앞에 두고 그는 그의 목적인 예수의 제자들의 체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예수에게 사로잡히는 일을 만났다.
그는 결국 다메섹에 들어갔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그곳에 들어갔고,
그의 처음 목적대로 예수 믿는 이들 가운데 있게 되었는데 체포자로서가 아니라 같은 성도로 신분이 반전되었다.

그는 예수를 만나 참 빛을 보고 지금까지 가짜 빛을 좇았던 눈이 멀어 제자들의 품에서야 눈을 다시 떴다.
그러자마자 그는 “즉시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예수를 박해하는 자에서 예수를 구주로 전하는 자로 대이동을 하였다.
그야말로 그는 이동의 사람이다!
그는 예수를 믿고 나서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다가 쫓기는 자가 되었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숨은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한 곳, 그가 놀던 곳─그래서 지금 가면 잡힐 곳─, 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그는 환영받을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배반자요 수배자요 위험분자다.
예루살렘은 이미 스데반의 순교─바로 사울이 그 증인이었던─로 몰아닥친 “큰 박해”에 직면하여 성도들이 떠나야 했던 도시다.
거기서도 그는 거침없이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했다.

그가 또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자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그는 다소로 보내졌다.
그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는 안가로 도피한 것인가?
잠시 휴식하면서 소강상태 후에 재기를 준비할 것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가서 그 지역에서 역시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는 나중에 안디옥으로 파송될 것이다.
그는 쉬지 않고 이동하는 사람, 거침없이 움직이는 제자였다.

평생 한 지역에서 사역을 하는가, 때마다 이동하면서 여러 곳에서 사역을 감당하는가, 여기에 우열은 없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대로 어디서나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 이동이 더 부담스러운 일이며 더 위험하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익숙한 것에 얼마나 익숙한가!
내게 복음으로 인한 움직임이 얼마나 있었는가!
나는 움직임이 참 적은 사람이다!
사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사람들을 적게 만나며, 사람들을 대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사람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기회와 실천이 참으로 부족하다.
아, 이 모든 것이 사랑을 위한 수고의 결핍이다.
나는 이제 좀 자리를 이동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전에 있지 않았던 곳에 앉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 맺고 나에 침잠하지 않고 사람들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아, 복음의 사람은 움직이는 사람이다.
바로 그 움직임에 의해 내게도 복음이 이르렀고, 내 안에 역동적인 생명인 복음이 있는데,
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복음에 위배되는 모순적인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