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2-26, 기도와 말씀에 이끌리어 기다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한 말씀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다.
제자들은 최근 40일 동안 예수와 두 번 작별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십자가에서 그가 죽을 때,
이번에는 부활하신 그가 승천하시면서.

첫 번째 작별 때 제자들은 미리 충분히 들었던 상황인데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혼비백산하여 흩어지고 도망쳤다.
그러나 두 번째에는 실패하지 않았다.
어쩌면 두 번째 작별이 더 실망스러울 수도 있었다.
아, 부활하셔서 이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줄 알았는데 또 떠나셔?
하고 의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수께서 미리 분부하신 그대로 제자들이 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고,
기다리라는 말씀대로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이들이 한 기다림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 기도하는 일이다.
제자들은 120여 명이 한 집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란 무엇일까?
이미 성령에 대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도록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 기도를 하다가 베드로가 성경을 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기도의 결과였을 것이다.
기도와 말씀은 반드시 상통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아뢰는 것만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모인 제자들에게 나눈다.
베드로가 나누는 말씀(의 해석)은 기도의 결과다.

베드로는 혼자 일어서서 말했지만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중심 삼기 위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한 사람 중심의 지도력이 아니라 공동체적 지도력을 세우기를 원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 기도한 결과로 얻은 지혜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를 배반한 가룟 사람 유다가 성경의 예언대로 제자 공동체에서 배제될 것이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직분을 누가 취하게 될 것인가?
그에 대해서도 베드로는 거침없이 제안을 한다.
“하나를 세워 ···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그것은 아주 구체적인 지침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나온 지혜요 대안이요 지시였다.

기도로 시작된 기다림은 말씀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정확히 찾고 해석했다.
그것은 기도로 시작했기에 가능했다.
공동 기도의 마땅한 귀결이었다.
그리고 말씀을 정확히 적용하는 데까지 갔다.
이 120명의 첫 교회 공동체는 기도와 말씀에 이끌리어 한걸음씩 나아갔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았다.
그 직분을 맡을 자의 자격, 그의 사명, 그를 결정하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과정은 기도로 끝났다.
기도로 시작하고 자기들의 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맡겼다.
그들은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대로 기다린 것이다.

이것은 분명, 나의 한 해, 그리고 우리 교회의 한 해에 대한 지침이다.
기도와 말씀에 이끌리어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은 방임이 아니다.
태만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이며,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찾아내는 부지런함과 지혜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구체적으로 행하는 순종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의 독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나눔과 협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은 다시 기도다.
이 일의 순환이 나의 일과요 삶이요 사명이어야 한다.
이 한 해 동안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