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27-42,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사도들이 다시 잡혀 공회 앞에 섰다.
이번에도 논쟁이 벌어졌고 공회는 “학문 없는 범인”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고,
예수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예수가 누구인지가 관건이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다.
예수가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가 희한한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성경에 예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예수가 행한 일들이 성경에 예언된 바인가 아닌가를 아는 것이다.
사도들은 바로 이 일에 자신들이 증인임을 주장했다.

궁지에 몰려 할 말을 잃은 공회가 사도들을 무력으로 제거하려고 할 때
공회원인 가말리엘이 나섰다.
그의 주장은 조금 더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선례들을 들어 하나님이 하신 일인지, 사람의 일인지는 결국 시간에 의해 판명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공연히 대적하는 데 힘을 쓸 필요 없이
조금 지나면 모든 것이 자명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듯이 보인다.
사도들의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을 수도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났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가말리엘의 주장은 매우 신사적인 것처럼 보인다.
사도들을 채찍질하여 훈방조치를 취하였지만 다시금 예수를 전하는 제자들을 더 이상 제지하지 않은 것은,
즉 다시 투옥하지 않은 것은 가말리엘의 발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말리엘의 말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이라고 그는 가정을 하였지만 과연 그 뒤의 말이 논리적으로 타당할까?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말리엘의 관심은 사도들의 “소행”의 출처에 있다.
그 출처가 어디인지 밝히는 데에 그의 목적이 있다.
그러나 정말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그것을 아는 것으로 족할 것인가?
그리하여 죽이지 않으면 되는 것인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는데도?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 그러면 그것은 사람이 마땅히 순종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믿고 따라야 한다!
가말리엘은 이 중요한 말을 생략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말이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

이것이 제자들과의 차이였다.
제자들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으로 예수를 믿었다.
그러나 공회원들은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더라도 그냥 가만히 있겠다는 것이다.
가말리엘은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을 경우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을 믿고 따르지 않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각 사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가 아닌가의 여부로 최종 판단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