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3:1-14, 주를 찬양할 이유들)

시편은 여러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이 믿음을 고백한 시들이다.
여기에는 탄식과 고백과 회개와 간구와 감사와 찬양이 나오고 예언도 포함된다.
이 가운데 아마도 시편을 상징할만한 대표적인 내용은 ‘찬양’일 것이다.
본문은 시편의 찬양의 전형이며 모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이 시는 이 구절로 시작하고 이 구절로 끝난다.
마치 시편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시의 시인인 다윗은 이 말씀을 자신에게(자신의 “영혼”에게) 명령한다.
다윗은 ‘이스라엘아’, ‘성도들아’라고 말하는 대신 자신에게 먼저 명령한다.
그러고 나서 ‘너’가 나오고 ‘이스라엘’과 ‘우리’가 나오며 ‘너희’가 언급된다.
이 시편의 마지막 구절은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로 맺는다.
다윗의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명령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부터 적용을 했다.

나의 명령도 내게 먼저 향해야 한다.
사실 나는 명령권자가 아니다.
나는 그저 명령에 순종할 자다.
그러나 그 순종을 내가 내게 명령을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순종의 여부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나는 잘 순종하도록 내게 명령해야 한다.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는 더욱 명령권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많은 백성을 자기 자녀로 부르셨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로서 나아간다.
그러므로 나 혼자만 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한다.
이때 나는 다른 형제들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독려하는 것이다.

다윗이 말하는 “내 영혼”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의 전부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씀은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는 내용이다.
‘영혼’이란 ‘몸’(육신)에 대조되는 존재요 영역일 수 있지만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다.
나의 일부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가장 흔한 분리가 말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말은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속마음은, 삶은 그러하지 못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왜 말은 (쉽게) 찬양하는가?
아마도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보이는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찬양하는 자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바로 외식이다!
이에 비해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삶도 얼마든지 가리고 감출 수 있다.
그리하여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씀은 나에게 어떠한 분리도 없이,
통합적으로(통전적으로), 전체가 일치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내 속에 어떠한 예외도 없이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높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마땅한 대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창조주로서, 구세주로서, 주관자로서, 주권자로서 하나님이 마땅히 높여져야 한다.

그리고 이 찬양의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찬양의 이유다.
왜 찬양을 하는가?
무엇 때문에 찬양을 하는가?
이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그것은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이 되기 쉽다.
물론 구체적인 이유 없이 그저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기에 하나님이 좋은 것이다.
그것이 불분명하거나 그것을 생략한다면 찬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진짜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주문처럼 내뱉는 ‘할렐루야’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 시는 그 점에서 시편의 전형이다.
여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와 근거들이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본문에 나온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도 이렇다:
용서, 치유, 구원, 새롭게 하심, 공의, 심판, 긍휼, 은혜, 인자하심의 풍성함이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기억하신다는 사실이다.
“그가 우리의 체질을 하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
이때 나를 누구로 아시며 기억하시는가?
한때 대단했던 나의 업적을 아시거나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다.
나의 본성이 무엇인지,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하나님이 아시며 기억하신다.
그것은 두렵고 하나님을 피할 이유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나의 진면목을 아시기 때문에 나를 우습게 아시고 홀대하시고 결국 나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맞으시고 품으시고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이 바로 찬양의 이유요 내용이다.
하나님이 내가 누군지를 아시기 때문에 나를 긍휼히 여기신다!
하나님이 내가 누군지 몰라서─내가 하나님을 속이는 데 성공해서─가 아니라
나를 가장 정확하고 진실하게 아시기 때문에 내게 긍휼을 베푸신다.
그것은 사랑이다!
바로 그것이 찬양의 이유요 근거다.
그리고 그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노래하는 것이 찬양이다.
그것으로 감사하며 감격하여 내 삶이 변화되는 것이 찬양이다.
찬양할 이유가 있어야 그 이유 때문에, 그 이유만큼 내가 변화될 것이다.
찬양은 단지 말이 아니라, 나의 전부, 즉 삶이며, 그것은 곧 변화다.
이제 2017년 한 해의 마지막 두 날을 지내며 하나님께서 내게, 우리에게, 우주에 하신 일을 생각하며 그 긍휼과 사랑을 찬양하고,
내가 그렇게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