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8-20, 성탄절의 표적)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잉태되고 어미의 몸속에서 태아로 자란 뒤 9개월 만에 태어나게 된 날,
누가 그를, 그가 약속된 메시아임을 알 수 있을까?
이사야 선지자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것이 주께서 주시는 징조라고 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어서 그것을 떠들고 다니지 않고 드러내지 아니하였다.
그러한 처신은 마리아를 위한 배려였다.
그러면 누가 이 징조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이제 하나님은 몇몇 사람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려주신다.
그런데 이때 주시는 표적이란 무엇인가?
하늘에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며 나타났다.
그 놀라운 광경을 본 사람은 단 몇 명의 목동들뿐이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누구나 볼 수 있는 하늘을 무대로 예수의 탄생을 포고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군 천사의 찬송─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표적인가!─을 표적으로 삼지 않으셨다.
만일 하늘에서 천군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큰 소리로 예수의 탄생을 알렸다면
당시 유대 땅의 수많은 사람에게 표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보다 더 놀라운 표적이 있을까?
그러나 천사들은 자신들이 수놓은 하늘의 장관이 아니라 다른 것을 표적으로 보여주었다.
바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표적이었다.
그것은 분명 표적이 될 만하다.
아기가 마구간의 구유(말 밥통)에 태어날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너무나 희한하고 희귀한 일이어서 표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희귀한 사건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표적이 된다.
바로 너무 미천한 출생이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갓난아기가 구유에 있는가?
그것은 그의 어미가 마구간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미천한 출생이 있을까?
이것은 단지 메시아인지를 알아보는 희한한 식별 구실을 하기 위한 것일까?
희귀함으로 말한다면 하늘에서 천군 천사들의 합창이 더 분명한 표적이 된다.
그러면 왜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표적이 될 것인가?
그것은 그가 누구로 오신 것임을, 그가 어떤 일을 하러 오셨음을 보이는 표적이 된다.
그는 낮은 자로 오셨다.
그는 죄인을 높이러 자신은 낮아지기 위해 오셨다.

그 표적을 본 사람은 불과 몇 사람뿐이었다.
아, 하늘을 무대로 하여 표적을 보여주셨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효과가 만점이었을 터이지만
하나님은 인기 연예인으로 예수를 보내신 것이 아니다.
예수는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죄인들을 구원하러 죄인의 모습으로 낮아지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다.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보여준 표적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그 소수의 목동들은 그 표적을 찾기 위해 밤중에 “빨리 가서” 집집마다 추적을 하였다.
그리고는 바로 그 표적에 따라 아기 예수를 찾았다!
그리고 그 표적에 의해 그들은 아기 예수를 알아보았고,
아직 영문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 표적에 따라 메시아의 탄생을 증언했다.

이로써 더욱 분명해졌다.
예수는 ‘상감마마의 행차’로 이 땅을 들르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양으로, 죄인의 모습으로 낮아지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이 다 보여주셨는데도 그 표적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표적이 아니라 자신이 고안한 표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나의 고집에서 벗어날 때에야 미천하게 오신 아기 예수의 진실을 대면할 수 있다.

아, 오늘날 교회들이 예수에게 화려한 궁중의 옷을 입히고
고급 장식으로 치장된 다른 예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하다면 성경이 확증한 대로 죄인을 위해 낮아지신 분이 아니라,
기껏해야 부자들을 위해,
고상한 현대 종교인의 경건 자랑을 위해,
제도화된 교회의 종교놀음의 꼭두각시가 되기 위해 온 교주에 불과하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만이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신 표적이다.
다른 표징들은 그가 예수가 아님을 입증하는 표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