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15-23, 만물이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어제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 또는 그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자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반영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다.

예수가 하나님이시면 그는 곧 창조주다.
창세기 1장의 우주 창조의 역사에서 삼위 하나님이 함께 일하셨다.
예수께서 그때 그 위대한 창조를 함께 행하셨다.
그러므로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이것이 진리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사람과 그 시야에 들어오는 우주 만물이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대상들 사이의 관계만 생각해오는 것이 가장 흔했다.
즉 인간과 자연의 관계다.
대체로 처음에는, 그리고 동양의 경우 지금까지도 자연을 더 크게 보고
인간이 그 안에 포함된 것으로, 자연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서양은 꽤 일찍부터 그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을 자연보다 더 크고 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리하여 인간을 만물의 척도라고 하였다.
만물의 기준이 인간이요, 인간에 의해서 만물이 평가된다.
심지어는 만물이 인간을 위해, 인간에게 길들이기 위해, 인간에게 사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말해왔다.

언뜻 성경도 이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른바 ‘문화명령’이라고 하는 창세기 1:28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첫 명령이 그렇게 들린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땅과 모든 생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권한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만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뜻인가?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하시듯이 자연을 관리하는 자, 돌보는 자다.
그러나 그때 인간이 인간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목적이 되도록 만물을 관리하는가?
아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다.
주인의 뜻에 맞게 관리하는 자다.
즉 주인을 위하는 자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맞게 자연을 돌보고 관리하는 자다.

“만물이 다 ···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이것이 진리다.

아, 만일 그것들이 나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면 얼마나 큰 비극인가!
그것은 내 맘대로 되고 다른 사람은 거기에 일체 관여할 수 없고,
더구나 그러한 전권을 가진 나는 결함투성이다!
만물이 나를 위하여 존재한다면 그것은 만물에게 엄청난 비극이다.
그러나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만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선하시고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기 때문이다.
만물이 그분을 위해 존재할 때만 만물에 행복이 있다.
선하시고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그분을 위해 존재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주관자가 되는 것은 나와 만물에 비극이다.
내가 무엇이든 주인처럼, 주관자처럼, 창조자처럼 행세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그 모든 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의 사용설명서도 알지 못한다!
만물의 모든 존재의 목적과 사용방법을 아는 분은 오직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뿐이다.
인간이 학문과 과학으로 젠 채하려 해도 도대체 뭘 얼마나 알고 있겠는가!

이제 이틀 후 성탄절의 탄생을 우리가 기다리고 기념하는 아기 예수는
“만물이 다 ··· 그를 위하여 창조”된 분이다.
그분이 오신다.
만물의 목적이 오신다.
만물의 근원이여 척도요 목표이신 분이 오신다.
아, 이것이 구원이다.
왜냐하면 죄인은 만물의 근원과 척도와 목적에서 벗어난 자요, 그것을 모르는 자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그 진리를 세우는 것이다.
그 진리 아닌 것은 곧 비극이다.
예수만이 “만물이 그를 위하여 창조”된 존재이므로,
그만이 만물을 화목하게 하며, 든든하게 하며, 기쁘게 한다.
바로 그분이 오신다.
이틀 동안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나의 주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다시 주인의 청지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바로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음을 알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기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