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에 입력하는 것이 안 되어 지난 밤 묵상을 올리지 못하고 이제야 게시합니다. 늘 수고하는 신하루 집사께 감사합니다.

(이사야 7:10-17, 마태복음 1:18-25, 처녀의 잉태, 성령으로 된 잉태)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징조”가 필요했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가 구세주인 것을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 “주께서 친히 징조를” 주셨다.
그것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다.

만일 한 부부가 아들을 낳을 것을 징조로 주신다면 그것은 매우 문제가 많다.
왜냐하면 세상의 부부들이 모두 아이를 낳기 때문이다.
단지 아들을 낳았다는 것만으로는 특별한 징조라 할 수 없다.
징조란 그것을 보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는 신호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일을 메시아의 징조로 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오시면 구세주인줄 알까?
구약에서는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것은 사람이 아이를 낳는 방법에 비하면 초자연적이었고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러면 그것이 징조가 될까?
아니다.
이미 그러한 출현은 자주 있었다.
신약시대에도 ─오늘 본문 마태복음과 같이─ 천사들이 꿈에도 나타나고 직접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도 징조로서 알아보기에는 그렇게 예외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로 한 것은 정말 징조가 될 수 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며,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 의해서만 생기기 때문이다.
인간은 남자 없이 여성에 의해서 번식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다.
만일 이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요, 사람들이 특별하게 알아볼 수 있는 사건이다.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수 없는 ─상상조차 가능하지 않은─ 이 특별한 사건은 “징조”로서 딱 맞는다.

그런데 이것은 멋진 징조가 될 수 있지만, 만일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아무 증거가 되지 않는다.
그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야만 그것은 징조다.
일어나지 않는 징조는 징조가 아니다.
너무 많이, 여러 번 일어나는 징조도 징조가 아니 듯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일은 징조가 될 수 없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때에 이르러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 그대로 그 징조를 보여주셨다.
드디어 처녀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만일 그 신기한 일이 어쩌다, 우연히 기적적으로 일어났다면 징조가 될 수 있는가?
아니다.
징조는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계획하신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사야 선지자에게는 뭔가 희한한 일 자체가 징조로 보일 수 있었지만,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질 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인가, 우연히 일어난 것인가가 구분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마태복음은 마리아의 잉태, 즉 처녀의 잉태 자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말한다.
바로 “성령”의 잉태다!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만일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은 일이라면 아무리 기상천외한 희한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징조가 될 수 없다.
만일 그러한 일이 우연히 벌어졌다면 어느 때고 또 그러한 우연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징조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만 한다.
처녀의 잉태는 그냥 없던 일이 발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태복음의 천사는 그것을 아주 명확하게 밝힌다.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사람이 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아이를 낳는 일만 할 수 있다.
우연히 벌어진 일도 아니다.
그러한 일은 우연히 벌어질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으로써만 가능하다.
그것도 삼위 하나님께서 연합하여 사역을 하심으로써 그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임을 확증한다.

이제 이 징조를 보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그가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즉 성령에 의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이 바로 죄인의 구원이다.
왜냐하면 죄가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과 분리를 야기하였기 때문이다.
죄는 곧 하나님을 떠난 것이며 구원은 하나님과 함께 함이다.
메시아의 징조는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이름을 통해, ─그러나 이름이야 누구든 그렇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난다.

이 징조를 맨 처음에 안 자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었다.
그는 이에 대한 설명을 천사로부터 직접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징조일 수 있었던 것은 미리 징조로 정한 사실이 있어야만 한다.
이사야의 예언이 바로 그것이요 마태복음의 성취가 바로 그것이다.
아,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어떻게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가르쳐주시는가!
하나님의 친절하시고 치밀하신 구원의 계획과 성취는 얼마나 감사한가!
이 징조를 안 자로서 나는 잠잠하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