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1:1-8,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

다윗의 시다.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고 “충성된 자를 살”피는 행위는 왕으로서 다윗의 모습이며,
또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게 한다.
이 시에서 세 번 반복된 단어가 왕으로서 다윗에게 중요하며,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성도에게 또한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바로 “완전”함이다.
다윗은 “완전한 길을 주목하”며,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고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를 찾는다.

완전함이란 무엇인가?
모자람이 없는 상태다.
특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형의 모습에서 변질되지 않은, 원래의 본질이 충만한 상태다.
완전한 길이 있고, 불완전한 길이 있다.
아, 완전한 길은 오직 하나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라고 하셨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며 “완전한 길”이며 바로 그 길이다.
예수를 말미암지 않고는, 즉 그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만이 “완전한 길”이다.
나머지는 모두 불완전한 길이다.
모두 치우쳤으며 화려하게 넓기는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로 이끄는 길이다.

또한 “완전한 마음”이 강조된다.
역시 완전한 마음과 불완전한 마음이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갖는 마음이 곧 불완전한 마음이다.
오직 완전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에만 완전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태초에 불완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완전한 창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불완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평생을 줄곧 하나님 없이 산다면 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완전하다.
성도라 할지라도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온전히 완전하지는 않다.
성령의 충만함에 복종하여 완전함을 누리기도 하지만 순간순간 연약하여지고 유혹을 당하고 다시 불완전함에 빠진다.
그러나 성도는 완전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완전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성도의 불완전함은 오히려 완전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겸손의 기회가 된다.
성도의 완전함은 어떠한 경우도 교만하고 자고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없다.

다윗이 세 번째로 말하는 “완전한 길”은 주목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길에 행하는, 즉 그 길을 걷는 모습을 제시한다.
길은 결국 걸으라고 있는 것이다.
어느 길이 완전한지 주목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모든 길이 생명에 이르지 않으며, 사실은 거의 모든 길이 죽음에 이르므로 완전한 길을 주목하는 것이 절대로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완전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불완전한, 즉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는 완전한 길을 갈 수 없다.
성도는 완전한 길을 주목하고 완전한 마음으로 충만하여 그 완전한 길을 걷는다.

완전한 길에 행한다는 것은 완전한 길이신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대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성탄절에 이루어진 그 완전한 길, 예수께서 순종하여 만들어진 그 길을 걷는 자가 성도다.
내가 매순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성령의 감화하심에 아주 민감하여
그 완전한 길 위를 걸어가는 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