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9:1-9, 그들은 주의 말씀을 지켰도다)

이 시는 다시 한 번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므로 그의 이름은 크고 두렵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정의를 사랑하시며 공의를 행하시는 왕이시다.

시인은 그의 백성들 가운데 모세, 아론, 사무엘을 예로 든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의 첫째 되는 속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기도하는 자, 하나님께 향하는 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성도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스스로 무관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간구할 때 응답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그들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다.
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는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마지막 때에 모르신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
기도는 하면서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더욱 낮아져서 회개하고 겸손하게 근신하면서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이 위대한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대로 갚으실 죄가 있었고 실수가 있었다.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얼마나 더욱 그러한가.
말씀을 묵상하며 새로운 깨달음에 감사하고 새 날을 기대와 다짐으로 출발하지만
이내 이것을 잊는다.
저녁이 되면 무슨 말씀을 묵상했는지 바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떤 말씀을 순종할지 각오하고 기도로 아뢰었던 것을 아예 잊어버린다.
그러니 내가 하나님 말씀을 지킬 틈이 없다!!
아, 나는 참 절망적이다.

그러나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죄와 실수이겠지만,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의 죄를 용서하셨다.
그것을 이 시편이 강조함은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만을 위함일까?
아니다.
이후의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므로 죄에 눌리지 않고 죄 짓고 절망에 빠지지 않고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주신 말씀 아닌가!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니” 나는 주님의 통치와 주권 아래 있으며
하나님은 성도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 온전해지도록 감화하시며 도우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신다.
그러하므로 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에서 회복된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마침내 나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자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을 아는 성도는 이 은혜에 더욱 나아간다.
그러라고 오늘 이 말씀을 하신다.
연약해도 다시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서 말씀을 지키는 삶으로 회복되도록.
그러므로 나는 또 저는 다리를 일으켜
죄와 싸우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자리로 나아갈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