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3:18-39, 다윗의 무명용사)

어제와 오늘 본문에 언급되는 용사들은 8절에서 말한 “다윗의 용사들”이다.
그들은 다윗을 위해 싸운 용사이며, 다윗과 함께 한, 다윗을 도운 용사들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들 총수를 37명으로 하여 많은 동역자들이 다윗에게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그냥 병사가 아니라 빼어난 충성과 기량을 보인 “용사”들이다.

요압의 이름은 그의 동생들, 아비새와 아사헬을 소개할 때 나온다.
그러나 정작 그의 이름은 37인에 속하지 않는다.
요압은 “다윗의 용사들”에 들어갈까 아닐까?

만일 그가 다윗의 뜻에 거역한 것을 들어 명단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비새도 뺐어야 한다.
그도 요압을 도와 아브넬을 살해했다.
요압은 군인으로서 포학하기도 하고 정치꾼으로서 교활하기는 했지만 다윗을 도와 국방을 튼튼히 하고 왕조를 견고하게 했다.
당장 내일 본문에서는 다윗보다 더 영적으로 분별력이 있음도 보여준다.

열왕기상에 나오는 대로 요압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아직 다윗이 살아있는데,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아들인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될 때에 그를 지지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솔로몬에 대한 경쟁이나 반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뜻에 대한 거역이며 아직 다윗의 생존시기이므로 사실 반역이기도 하다.
열왕기상은 요압이 압살롬에게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아도니야 편에 선 것을 강조하여
사실상 두 반역을 비교함으로써 결국 요압이 반역한 것을 지적한 셈이다.
이것을 고려한다면 요압이 “다윗의 용사”에 해당된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윗의 용사”의 목록은 끝까지 다윗 왕과 이스라엘 나라에 충성한 용사들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명단과도 같은 속성이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가 믿는 자이다.
아무리 잘 했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면,
결국 마지막에 다른 길로 갔다면 그는 그 나라의 용사가 되지 못한다.

37명의 이름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여기서 처음으로 나온다.
어제 본문의 3인부터 이미 그러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명으로 있던 자들을 성경은 “용사”로 부르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탁월한 능력과 업적이 있지만 여전히 이름이 무명으로 있는 용사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시대에 7000명을 예비해 놓으신 것을 보면 어느 시대에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무명의 용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대에 대해 늘 안타까워하면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해 늘 소망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그 무명용사 가운데 하나가 되도록 사명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