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2:21-28,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는가?)

다윗의 시가 계속 되고 있다.
앞부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을 노래하고
오늘 본문에서는 다윗의 모습, 그가 한 일을 아뢴다.

그는 “공의”로우며, 그의 손은 “깨끗”하고,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의 “법도”와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다.
다윗은 또 하나님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다.

혹시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면 교만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건전한 자긍심이 가끔 언급된다.
다윗이 그러하고 바울도 그랬다.
자신을 드러내어 자기를 높이려는 것은 당연히 교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하는 것이라면 결국 높아지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므로 교만이 아니다.
그것이 성도의 믿음의 자긍심이다.

다윗이 이러한 고백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신의 모습이 과연 그러한가를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었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고백하려면
과연 내가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는가 하고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가 아니라면 살피지도 않고 무턱대고 자기자랑을 한 셈이 된다.
다윗이 고백한 모든 것은 다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나는 공의로운가? 내 손은 깨끗한가? 나는 여호와의 도를 지켰는가? ···

이 질문들은 매일 내 삶을 살피는 질문이어야 한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그에 비추어 나는 과연 어떠한가 하고 물어야 한다.
그 말씀들에 대해 나의 지적 해석을 나열하는 것이 묵상이 아니라
내 삶을 저울에 달아보는 것이 진정한 묵상의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은 그대로 내게 묻고 나를 판별하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는가?
아,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이렇게?
떠나지 아니한 때가 있지만 떠난 때도 있으므로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라고?
대체로 그렇다면 그렇지 못한 부분들도 상쇄되는 것인가?
아, 나는 부끄럽다.
그러나 일단 중요한 것은 내게 질문하는 것이다.
말씀에 따른 자문과 자답.
이것 없이는 교만에 이를 뿐이다.
매일 묵상은 매일 질문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