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8:1-10,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

이 시는 다윗이 지었고 그 내용은 “광야”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것이다.
본문은 그 광야가 어디인지 분명히 밝힌다.
“시내 산”이 언급되고 “광야에서 행진하셨”다는 표현에서 이것이 출애굽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위기 가운데 있었다.
원수들과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있었고 고아와 과부와 고독한 자와 갇힌 자를 업신여기며 괴롭히는 자들이 있었다.
“거역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들을 흩으시고 연기처럼 사라지게 하신다.
악인은 하나님 앞에서 망한다.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셨다.
흡족한 비로 곤핍한 사업을 견고하게 회복시켜주셨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앞에서 나아가 광야에서 행진하셨다.
아, 하나님의 구원의 권능은 애굽을 빠져 나오고 홍해를 가를 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계속 권능을 행하셨다.
계속 구원하셨다.
계속 돌보셨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던 때를 기억하며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시로 노래했다.
아마도 다윗은 이 시를 쓸 때 자신의 광야를 기억하지 않았을까?
만일 사울에게 쫓겨 광야로 도피하기 전에 쓴 시라면
다윗은 나중에 실제로 광야 생활을 할 때 이 시편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굳게 믿고 든든했을 것이다.
아니면 광야 생활 중에, 또는 그 기간이 끝나고 썼다면
출애굽 광야에서의 역사가 어떻게 자신에게도 이루어졌는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지를 이 시에 암시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내 광야든, 십 광야든 누구나 어렵고 힘든 광야를 만날 때 모든 성도는 이 시를 같이 노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앞에 나가셔서 “광야에서 행진”하신다.

광야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그냥 나와 같이 힘없이 계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권능을 행하신다.
바로 거기 광야에서 성도의 구원을 이루신다.
나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신실하고 견고하게 이루심을 더욱 더욱 확실히 믿는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시는 때가 있겠는가?
문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심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리하여 내가 정신 차려 성령의 감화에 젖어
성령과 동행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번 주 내 기도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