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6:1-10, 자기를 위한 속죄부터)

성막(성전)은 각종 제사와 제사를 드리러 온 사람들,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들로 늘 붐볐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리기 위해,
하나님과의 화목을 감사하기 위해 성막뜰로 와서 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성막의 실내인 성소에서는 제사장들이 매일 분향하고 등잔의 불을 관리하기 위해 드나들었다.
그러나 성막의 한 장소는 일 년에 단 하루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성막의 중심인 지성소, 지극히 거룩한 곳에는 속죄일 하루만 대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들어간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 있기에 목숨을 걸고 들어가야 한다.
그가 죽는 경우 다른 이가 들어가 시신을 끌어올 수도 없도록
대제사장은 몸에 방울을 달고 끈을 묶어서 방울소리가 멈추어 죽은 것이 판명되면 끈을 잡아당겨 시신을 끌어내야 했다.

이날 준비해야 할 제물은 수송아지와 숫양, 그리고 두 마리 염소와 숫양 한 마리다.
그리고 속죄는 무엇보다 대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부터 시작한다.
대제사장은 먼저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한다.
수송아지와 숫양이 이것을 위한 제물이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를 하는데 그 제물은 두 염소와 한 마리 숫양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대제사장은 한 사람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다수(전체)이므로 제물의 크기가 이에 비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한 사람을 위한 제물로 염소나 양, 백성을 위한 제물로 소를 드리는 것이 상식적일 것 같다.
그러나 일 년 중 한 번의 속죄일을 위한 속죄제물로 드리는 소(수송아지)는 바로 제사장 자신과 집안을 위한 것이다.
염소와 양이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이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이지만 그 자신이 죄인이다.
그는 자신의 죄부터 속죄해야 한다.
그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고 더 중요하다.
대속죄일의 제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제물로 드린다.
마치 제사장 자신의 죄가 가장 큰 것처럼,
그가 백성 가운데 가장 큰 죄인인 것처럼
하나님은 가장 큰 제물을 그에게 요구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의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장 큰 제물을 요구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장 큰 죄인인 것처럼 가장 큰 희생제물을 드렸다.
그것은 소와 양, 혹은 소와 염소의 차이 정도가 아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죄든지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나 곡식으로 하나님께 속죄제물을 드림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제물로 드리셨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그렇게 짐을 지셨다.

율법의 속죄일 규정이나 예수님이 드리신 십자가의 속죄제물은 제사장의 짐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세상을 위한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제사장으로 먼저 부름 받았다는 것은 곧 회개로 먼저 부름 받았음을 의미한다.
나의 죄가 세상 죄보다 더 크고 무겁다.
나는 세상에서 죄인 중에 괴수다.
나는 예수님처럼 대신 속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것도 가장 큰 죄인이기 때문에 속죄한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에게는 교만의 여지가 결코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