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3:40-59, 진영 밖)

전염성으로 인해 공동체를 크게 위협할 악성 피부병(나병)은 공동체적으로 대처된다.
그는 부정하며 공동체로부터 격리된다.
그는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너무 가혹한 규정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도 원리는 갖다.
전염의 차단, 그를 위한 격리.
단지 시대적 발전에 의한 그 시설의 편리함이 차이 날 뿐이다.
그렇다 이 규정은 가혹하고 단호하다.
이 질병은 사회적 의미뿐 아니라 영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더욱 가혹하다.
그는 부정하다는 판결을 받고 그것을 자신이 고백해야 하며 하나님 백성과의 영적 교제로부터 단절된다.

물론 오늘날은 그 의미가 달라졌다.
예수님 안에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부유하고 강한 자가 모두 예수님 안에서 동일하게 거룩한 성도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누구나 죄인이다.
제사장도 바리새인도, 어떤 종교적 열심과 직분과 경력에 상관없이 죄를 지은 자는 죄인이요 부정하다.
그리고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격리시키며 성도와 교제하지 못하게 한다.
본문의 가혹함은 죄의 결과로서 오늘날도 동일하다.

죄를 지은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깨뜨리므로 하나님과 공동체에게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의식하고 회개하고 근신해야 한다.
영적으로 어두움의 기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감내해야 한다.

다른 한편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죄를 지어 부정하게 된 자를 그냥 내치지 않는다.
그는 특별한 돌봄이 필요하다.
본문처럼 심각한 질병에 대해 인간이 아무 대처를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는 격리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환자는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격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적인 시설이 있고 치료의 기술이 훨씬 나아졌으므로 사회적인 격리도 상당히 극복될 수 있다.

영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구약 율법의 경우도 악성 피부병의 환자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친 것이 아니다.
그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인데,
그것은 병이 치료되면 정결하게 되며 사회적·영적으로 회복된다는 것을 말한다.(내일 말씀이 그러하다.)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이 드러난 오늘날은 교회 공동체가 영적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돌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사명이다.

죄의 심각함에 대한 단호한 대처,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인한 회복의 소망과 돌봄,
이것은 율법의 연장이면서 그것이 완성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