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1:1-23, 어떤 음식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음식과 관련하여 성경은 약간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에서는 뭐든 다 먹으라 하고, 어디에서는 이것만 먹을 수 있다고 제한한다.
이것은 철저히 시간(시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맨 처음에 즉 천지창조 직후에 주신 음식은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다.
즉 채소와 나무의 열매(과일)로 살생과 관계없는 채식의 식단이다.
그러나 노아 홍수 후에 채소와 더불어 “모든 산 동물”을 먹을 것으로 주셨다.
아마도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죽음이 들어온 것과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산 동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죽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육식이 가능했던 상황은 출애굽 이후 주어진 율법에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되면서
“모든 산 동물”에서 몇 가지 종류의 특정 생물로 제한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마가복음 7:19)고 선언하셨다.

정리하면 맨 처음은 창조의 원형이고,
그 다음은 타락 이후의 변화이며,
그 다음은 율법에 의한 구분이고,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신약)에 의한 쇄신(회복)이다.
이렇게 성경의 음식 규정은 시기에 따라 변화하였다.
그렇다면 율법의 시기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구분된 시기이며 이것이 음식 규정에 반영된 때이다.
그 이전에는 그러한 구분이 없었으며 예수님 이후로는 그 구분이 폐지되었다.(무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율법의 이 규정은 분명 오늘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이것에 의해 사람을 구분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사실 율법에서도 음식 자체를 평가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 거듭 언급되는 말씀은 이러이러한 생물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너희에게 가증한 것”,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 “너희가 혐오할 것”이라는 내용이지,
그 생물들이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생물 자체가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희에게 부정하다”.

하나님은 욥에게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으뜸”으로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언급하신다.
그것들은 율법의 구분에 의하면 먹을 수 있는 생물들이 아니다.
(욥이 율법 이전 시대의 인물로도 볼 수 있다면) 시편에서도 리워야단이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을 예증하는 생물로 표현되는 것으로 봐서(104:26)
생물 자체의 정결함과 부정함의 구분이 아니라,
“너희에게 부정”한가 아닌가의 구분이 율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율법의 조항은 폐지되거나 무의미해졌어도 그 정신은 오늘날도 여전히 동일하다.
율법이 “너희에게 부정”하다, 아니다로 구분한 것은
성경 전체에서 ─신약 시대 이후도 역시─ 죄와 의의 구분으로, 선과 악의 구분으로, 순종과 불순종의 구분으로 적용된다.
예수님에 의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폐지된 것이지
죄와 의의 구분이, 선과 악의 구분이, 순종과 불순종의 구분이 폐지된 것은 아니다.
성도는 언제나 이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것은 구약의 율법에 따라 매사에 신중하게 살았던 삶의 자세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성도는 모든 영역에서, 모든 시간에 하나님께 참으로 신실하게 사는 자다.
이것이 거룩하게 자신을 구별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