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6:10-20, 찬양 공동체)

시인은 어제 본문에서 “온 땅”과 “만민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친다.
그것은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며,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명하는 것이다.
그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전한다.

시인이 그렇게 하는 배경이 오늘 본문에 설명되고 있다.
그는 환난을 당했으나 오히려 귀금속과 같이 정련된 자신을 보며,
“우리가 불과 물은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시인은 이제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선포한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는 대상은 어제 본문보다 더 적은 수일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이다.
“온 땅”(“만민”)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이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곧 성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고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범위가 좁아진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환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일을 모든 사람에게 나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이 은혜를 나누는 대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며
분명 믿는 이들과는 더 세밀하게 나눴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나누고 공언하고 공동체적으로 찬양한다.
그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이에게 함께 찬양하기를 제안한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일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세상에서 성도가 고난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것을 경험하는 귀한 기회가 되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공동체와 함께 찬양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제되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선포하는,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자만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자만이 공동체를 찬양 공동체로 세울 수 있다.
하나님은 나만의 감사와 찬양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드리는 감사와 찬양을 원하신다.

(이 묵상을 보시는 교우들께.
어제 “온 땅”과 “만민”에게,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고 선포하는 말씀을 묵상하던 때는
제가 이번 학기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복음과 관련된 주제를 말하기 직전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3.30) 그 이야기를 시작하여 월요일(4월 4일)에 본격적으로 기독교 복음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과 같이 화요일 묵상 나눔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 여러분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찬양 공동체를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담대하고 지혜롭도록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