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1-11, 추방당한 자에서 장군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듯 했지만 성숙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그들의 조상은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지도자를 잃고도
침착하게 하나님께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하고 여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에 의지하였고
하나님의 뜻이면 누구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 암몬 자손과 대치하고는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하고 망설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은
이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고 담대하기는커녕 서로 눈치만 보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의 모습과는 달리
전쟁에 직면하여서는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입다의 등장은 이러한 영적 나태와 비공동체적 무책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는 “큰 용사”였지만 “기생”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동족들에게 전적으로 무시당했다.
심지어는 그의 배다른 형제들에 의해 쫓겨났다.
그러나 전쟁에 의한 필요로 인해 입다가 기용되는데
그것은 사실 그의 배제와 추방보다 그를 더욱 서글프게 하는 것이었다.
그를 추방했던 자들이 이제는 그를 “장관”으로 모시려한다.
그를 “모든 주민의 머리”로 추겨세운다.

입다는 피해자였고 억울한 자였다.
같은 처지에 있던 기드온의 첩의 아들 아비멜렉에 비하면 한참 낫다.
그는 지혜로운 타협과 설득으로 민족을 구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가 얼마나 부족함과 어리석음이 많은 자인지 드러난다.
억울한 추방과 역겨운 아부의 경험들이 분명 그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지도자의 모습에는 백성들의 상태와 수준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입다의 문제는 이스라엘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