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26-40, 질서와 화평)

왜 교회 안에 분쟁이 있으면 안 되고,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되고, 방언보다 예언이 더 나은가?
교회 안에 왜 질서가 있어야 하는가?
그냥 모든 것을 자유로 하면 안 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근거는 하나님이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유로우시고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으시며 사람의 자발성을 귀중히 여기시지만
그것은 무질서와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질서는 화평한 질서다.
조화롭고 자유로우며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질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세상이 그러하며, 하나님 자신이 그러하시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은 참으로 신비롭고 자유롭고 조화되며 질서 있는 교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의 무질서 성향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과 세상은 아름다운 창조질서가 깨지고 왜곡된 체제 아래 있으며 본성도 변질되었다.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믿는 성도들은 구원을 받아 타락의 저주로부터 회복되지만
그것은 칭의라는 법적 구속이지 실제적으로 완벽한 상태의 변화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것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거룩함으로 향한 변화와 성숙의 과정에 있다.
누구나 다 그러한 과정에 있다.
그러므로 누구도 아직 완전하지 않다.
아무리 성숙해도 여전히 삼위 하나님의 연합과 질서와 화평에는 못 미친다.
특히 사람이 여럿이면 그 무질서의 성향은 더욱 커지고 믿는 이들 가운데도 불화가 생길 수 있다.

구원받은 성도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 가장 정직하게 아는 자이다.
그는 구원받은 것과 그 변화를 확실히 알고 그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아직 너무도 부족하여 여전히 하나님께 송구스럽고 죄인과 같은지 안다.
그 정도로 그는 자신에 대해 진실하게 아는 자다.
그러므로 성도는 조심하고 신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질서와 화평을 좇아야 한다.
방언이든 예언이든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해야 한다.
특히 말을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 질서와 화평이 이루어지는가!
차라리 잠잠한 것이 낫다.
말은 자칫 주장이 되고 판단이 되며 가르침이 된다.
이것을 막기 위해 차라리 잠잠하라.
그러나 반대로 교회 안에 자유롭게 말하며 나누며 권하는 교제와 연합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나는 잠잠하며 다른 형제가 말하도록 부추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잠잠하고 듣는 자가 되는 것이 교회 질서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모두 이렇게 생각하면 서로 잠잠하며 서로 들으려 하며 서로 귀 기울이며 결국 서로 나눈다.
이것이 화평한 질서다.
하나님은 강압적인 질서가 아니라 화평한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질서를 빙자하여 불화를 촉발하거나 화평을 빌미로 무질서를 종용한다면 얼마나 그릇되고 어리석은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