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5:1-13,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

다윗은 하나님께서 계시며 일하시는 공간적 범위에 대해 아주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시에서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와 땅의 산물들과 한 해(年)와 만민의 소요까지
모든 영역과 대상과 사람이 다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있다고 선언한다.

흔히 하나님께 대한 고백과 감사는 나 자신의 삶에 국한되기 쉽다.
대개 내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질 때 그것이 하나님의 돌보심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고백한다.
그러나 천지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행하시는 대상이요 영역인 것을 아주 민감하게 인식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

우리의 감사를 보라.
대개가 자신의 삶에 국한되기 일쑤다.
땅과 바다와 강과 밭고랑과 단비와 초장과 양떼에까지 얼마나 확대되는가?
더구나 “만민의 소요”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권능을 행하시는 것을 알고 보고 느끼고 감사하고 찬양하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교회에서 나누는 감사들, 대표기도 속의 찬양제목에 이런 것은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더구나 사회와 나라에 대해 오직 비판하는 일만 즐비하여서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란,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란 도무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에서도 그렇다.
설교와 기도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다윗은 땅과 바다와 산들과 초장과 곡식과 만민의 소요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다.
그의 이 시(기도)는 하나님의 권능의 범위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아, 어디까지라는 끝이 없다!) 아주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밝힌다.
이것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다스리시는 영역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언급하고 선포해야 한다.
이 세상의 어떤 일도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다.
잘 되는 일, 형통한 일, 기도제목이 이루어지는 것에만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야의 싸움에도, 부패한 뒷거래에도, 조직들의 폭력에도 하나님은 권능을 행하신다.
공의로, 긍휼로.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와 감사와 찬양은 땅에서 바다까지, 양떼에서 만민의 소요까지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은 권능으로 땅을 돌보신다.
하나님은 땅을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아침과 저녁은 감사요 즐거움이다.
그것은 만사형통이나 문제의식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이 바라는 대로 잘 되든 아니든, 만민이 정의롭든 소요를 일으키든,
하나님께서 계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시며 모든 것을 권능으로 다스리심을 알므로 감사하고 즐거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땅을 돌보시므로 오늘 하루와 저녁이 감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불만과 부담과 허망함과 피곤함으로가 아니라 오직 감사와 즐거움과 사명감으로 아침을 맞고 저녁을 보내야 한다.
성도는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 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