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3:1-16, 이제도 더욱 범죄하니)

모든 범죄는 교만과 관련된다.
자기를 높이는 것, 여기서 죄가 시작되고 그 죄는 이것을 더욱 향한다.
교만이 죄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잊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높인다는 것은 원래의 높이(위치)보다 더 높아진다는 것이요,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높이를 차지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신 줄 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교만은 하나님을 낮추는 것이며 그것은 반드시 우상숭배로 연결된다.
묘하게도 하나님은 낮추고 우상은 높임으로써 자신을 높인다.
그 결과는 패망이다.
하나님께서 교만하고 우상숭배하는 백성을 벌하신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백성이면서도 스스로 교만하였고 우상숭배까지 하였으며
그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였으면서도,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한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우상의 정교한 제조에 최대한으로 발휘한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하나님을 위해 쓰이지 않고 우상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그들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을 위한 것인데 결국 우상의 정교한 제조에 바쳐지며 그럼으로써 자신을 높인다.

이미 교만과 우상숭배가 하나님의 진노와 벌에 해당되는데,
이에 더하여 “더욱 범죄”하는 그들의 결국은 무엇이겠는가?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으로 “그의 근원이 마르며 그의 샘이 마르고 그 쌓아둔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이것이 “더욱 범죄”한 결과다.

혹 한 번의 죄를 지어 그에 대해 경고를 듣고 징계를 받고도 “더욱 범죄”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가련한 일이다.
한 번의 범죄는 실수라 해도 “더욱 범죄”하는 것은 결코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우매함이요 고집스런 도전이다.
나에게서 문제가 이 “더욱”이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욕심, 한 번의 교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더욱” 하는 것이다.
한 번이면 얼마나 충분한 것인가!
단 한 번이래도 그것은 죄의 쓰디쓴 결과를 야기하기에, 삶에 아픈 상처를 내기에,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긍휼을 알기에 얼마나 충분한 것인가!
그런데도 그것이 모자라서 그것을 “더욱”하려는 것이 나 아닌가?
나는 “더욱 범죄”하는 자가 되지 말자.
여기서 멈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