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24-38, 동일한 말씀을 들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 사람에게 임했다.
그 말씀은 동일한 내용이었다.
‘소돔이 매우 악하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그 악인들과 함께 망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소돔을 떠나게 하심으로 심판을 면하게 하신다.’
이 말씀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롯에게, 그의 식구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이 동일한 말씀에 반응이 각기 달랐다.
이들의 각기 다른 반응은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예를 드신 네 종류의 밭과도 같다.(마태복음 13장)
천사들을 성욕의(그것도 동성애적) 대상으로 본 소돔 사람들은 굳이 거론할 것도 없다.
롯의 예비 사위들은 “길 가”와 같다.
이들은 이 말씀을 들었지만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았다.
이들은 씨앗이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 “길 가”와 같다.

롯의 아내는 “돌밭”과 같다.
돌밭은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않아 뿌리가 없어,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멸망하는 소돔성을 향해 “뒤를 돌아보았음으로 소금기둥이 되었”다.
그는 소돔성을 나오기는 하였지만(“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소돔성의 멸망의 소리에, 혹은 소돔을 그리워하여 “곧 넘어지는 자”가 되었다.
그는 끝내 구출되지 못했다.

롯의 두 딸들은 “가시떨기”와 같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다.
그들은 소돔을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나아가 어머니와 달리 살아남았지만,
그들은 씨앗이 해야 할 열매를 맺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들은 말씀이 맺는 열매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염려와 방법으로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고 후손(열매)을 얻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나중에 이삭을 결혼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친척에게로 종을 보내 리브가를 구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
그들은 후손의 문제에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소돔의 관습을 따랐다.
그들이 맺은 열매는 하나님께 분명 죄가 되는 열매였다.

롯도 아마 “가시떨기”에 해당될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산으로 도망)을 자기 편의에 맞게 고친 “소원”(작은 성읍으로 도망)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지만
정작 그 성읍(소알)에 거하게 되자 거기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염려(두려움)와 맞바꾼 자이다.

아브라함은 “좋은 땅”과 같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로서 “결실을” 맺은 자이다.
그는 소돔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소돔에 사는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그 말씀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말씀을 제대로 깨달은 자였다.
그리고 그는 롯을 구하기 위해, 사실은 소돔 “온 지역”이 하나님께 “용서” 받도록 간청을 하였고,
그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롯을 구출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그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그로 인해 롯의 가정이 소돔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받았다.
그는 롯의 가정을 구원하는 결실을 거뒀다.

모두 동일한 말씀을 들었으나 반응이 달랐고 그 결과가 달랐다.
말씀을 깨닫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