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7:1-24, 감싸고 도시며 할 일을 조종하시는 하나님)

엘리후가 하나님의 “권능”을 말할 때 무엇보다 창조의 사건으로 예시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과 상의하거나 조언을 해준 자가 없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을 지켜보거나 구경한 자도 없었다.
모든 피조물은 전적으로 수동적으로만 하나님의 창조 대상이었다.
그런데 엘리후는 하나님께 그 상황을 미리 전해들은 것처럼
아주 상세히, 사실상 창세기보다 더욱 구체적이며 정확하게 창조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마치 창조의 증인과도 같다.
그러나 이제 창세기부터 모든 성경에서 천지창조의 기록을 읽은 성도들은
엘리후와 마찬가지로 그 창조 사건의 증인이다.
엘리후가 그 자리에 없었던 사건을 아주 생생히 보도하듯이
우리도 천지창조의 보도자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거나 거부한 채 천지(자연) 자체를 신으로 섬기거나,
그 반대로 과학으로 자연의 실체를 다 파악하고 대체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그 위대한 크기를 다 분해해 놓았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주의 크기를 제대로 아는 자이다.
그것은 참으로 놀랍고 위대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신이 아니며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성도는 우주만물로 인하여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이다.
세상은 자연을 극대화하든 극소화하든 자연에만 매달리지만
성도는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이다.

엘리후는 천둥과 번개와 눈과 큰 비와 폭풍우와 추위와 얼음과 구름과 남풍을 묘사한다.
그 결론은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누구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할 수 없다.

엘리후는 특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뒤에 그것을 어떻게 주관하시는지를 정확히 보도한다.
“그는 감싸고 도시며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인간의 계몽으로 하나님을 논하려 했던 자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뒤에 물러서시고 만물이 스스로 자동으로 돌아가게 하셨다고 추정하였지만 그들은 성경을 모르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주관하신다.
만물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운행하시므로 움직인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수면 위에 운행 하시”듯이
하나님은 지금도 만물을 “감싸고 도시며” “조종하”신다.
사탄이 공중의 권세를 잡고 세상을 지배하는 듯이 보이지만
만물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고 하나님의 주관으로 운행된다.
이 지식을 가진 자가 진리를 아는 자이다.
이것을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이것은 성도만 아는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