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1:1-19, 인류역사의 참된 실상)

다니엘은 환상을 통해 또는 계시를 받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보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는 그것을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고 표현하였다.
“참된 것”이란 무엇인가?
우리 귀에 익숙한 것은 ‘진리’, ‘복음’, ‘구원’이다.
다니엘뿐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이 결국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이것이다.
세상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이것이 진리요 복음이요 구원이며 “참된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본문은 다른 데에 더 강조점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본문에도 마지막에 왕(들)의 패망을 보여줌으로써(“그가 드디어 ···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궁극적으로 악이 심판을 받고 성도가 구원될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본문은 훨씬 긴 분량을 이전의 과정에 할애한다.

많은 왕과 나라가 등장한다.
“메대 사람 다리오” 때에 다니엘은 “바사”의 “세 왕들”,
“그 후의 넷째(왕)”, “헬라 왕국”, “큰 권세”로 “자기 마음대로 행”할 “한 큰 능력 있는 왕”(=알렉산드로스 대왕),
그 이후의 “다른 사람들”로 이어지는 역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남방의 왕”과 “북방 왕”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것은 두 “왕”의 대결이 아니라 그 “군주들”의 자손들(“공주”, “아들들”)이 대대로 벌일 ‘지리하고도 맹목적인 전쟁’이다.

그렇다.
누가 이기는지 지는지도 모를 복잡하고 얽힌 전쟁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그리고 다니엘이 우리에게 보여주겠다는 “참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리하고도 맹목적인 전쟁’!
이 이야기의 특징은 끊임없이 상황이 반전되고 사태가 뒤바뀐다는 것이다.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칠 자가 나온다.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려고 하는데,
“그러나” 그들은 힘을 잃고 약해져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 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갈 것이다. ···
이야기는 끊임없이 “그러나”로 이어진다.
강하지만 뜻을 관철하지 못하며, 쳐들어가지만 오히려 물러간다.

왜 그러한가?
왜 이렇게 ‘지리하고도 맹목적인 전쟁’이 반복되는가?
“그(들)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그렇다.
왕들의 전쟁사의 특징이요 본질은 그들이 “마음이 스스로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자기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가?
그 “자기 마음”은 자기보다 강한 적에 의해, 자기보다 약한 자손에 의해,
주전론자에 의해, 주화론자에 의해 제한되고 꺾이고 결코 뜻을 이루지 못한다.
단지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다.
이 사실이 인간 역사의 “참된 것”(실체)이다.
그것은 결국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할 것이다!
인류 죄악사의 헛됨이 바로 인간 역사의 “참된 것”이다.
성도는 이 허망함을 아는 자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고난을 상대화시키는 자이다.
세상의 절대군주들과 절대권력들을 얼마든지 상대화시키는 자이다.
그것에 목매달지 않으며 좌우되는 않는다!
성도는 그런 것에 끄떡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