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1-12,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12장의 “그러므로” 이후 아주 구체적인 적용의 내용들이 계속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내 마음이 바뀌고 성품에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반드시 공동체적인 변화로서 구현되어야 한다.

사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삶에는 내적, 외적 삶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
성도는 모든 면에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삶을 산다.
성도의 삶은 통합적이며 일관적이다.
내적 성품의 변화는 자기만의 거룩함이나 경건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바로 옆의 형제자매에게도 똑같이 나타나야 한다.
성도의 내적 성품은 공동체 안에서 입증되어야 한다.

어제 말씀이 사회(국가) 공동체 안에서의 적용이라면 오늘 본문은 성도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원칙은 동일하다.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다.
정부와 정치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에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나듯이,
성도 사이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고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그 누구에 대해서 하나님과 무관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특히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를 대할 때에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 그렇다면 내가 주인인 셈이다. ─
그 형제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하듯이 해야 한다.

바울은 특히 실수하기 쉬운 부분에 대해 강조하여 주의한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비판하”는 일이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것을 바울은 잘 안다.
교회 안에 차별이 있다.
그 차별의 희생자는 대개 약한 자다.
강한 자에게는 대체로 함부로 하지 못하면서 약한 자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것처럼 주의하지 않는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믿음의 연수가 아직 짧은 사람,
교회 봉사에 아직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은 사람,
가난한 사람,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
이들은 대체로 교회 안에서도 업신여기거나 비판하기 쉽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나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주인이시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비판하는 것이 된다.
있을 수 없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형제 사이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권자이심을,
하나님께서 주인이심을 기억한다면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다 “주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