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1-14, 국가와 정치. 하나님의 주권)

로마서 13장은 성도들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준 말씀이다.
바울은 국가 및 사회에 대한 이 교훈을 현대 민주주의가 구현한 시민사회와는 너무도 다른 정치체제와 상황에서 가르쳤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당시의 왕권과 정부는 불의의 권력이다
(시민들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식민지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처럼 합법적이거나 민주적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시대든 권력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권세이므로 복종하라고 바울은 명령한다.

이 말씀은 성도들의 국가관과 정치관이 세상의 흐름과 매우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말씀은 현대 정치사 및 특히 우리나라의 최근 역사에서 매우 감당하기 어려운(=시대착오적인) 말씀처럼 보인다.
그러나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성도라면 정치에 대해 무조건 시류에 편승할 수 없다.

본문은 특정 정치체제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발전해왔지만 바울은 어떤 체제가 하나님 뜻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바울이 말하는 핵심은 어떤 형태든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권세의 복종은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모든 세상이 다 하나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서는, 하나님께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란 한 치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에 죄와 악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란 세상이 죄를 짓도록, 안 짓도록 그것을 하나님께서 계획해놓으시고 각본대로 실행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아시고 판단하시고 마땅하게 다루신다.
모든 것을 공의로 다루신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사람의 시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행해진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기다리신다.
그 순간은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므로
하나님이 그 악에 대해 아무런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고,
하나님은 그 사안에 대해 주권이 없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오해다.
나에 대해 적용하면 나의 얄팍한 속내가 금방 드러난다.
나의 불의와 죄악에 대해서 과연 나는 그 즉시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시기를 바라는가?
아니잖은가!
나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아주 오래 참으시기를 바라지 않는가!
결국 나를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기를 바라지 않는가!
거기에 걸리는 시간에 대해 나는 얼마나 느긋하고 관대한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감화하시는 수고가 곧 하나님의 주권의 행사다!

그러므로 세상의 정치와 국가현실에서 벌어지는 불법과 불의는 하나님이 주권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주권이 있으시고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권을 행사하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의무는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권세들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정부와 권력자에게 국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이유는 선을 상주고 악을 벌줌으로써
선악 간에 사회의 질서가 바로 잡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자들은 (성도에게)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된다.
권력자가 불의한가, 폭군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 불의와 불법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마땅히 판단될 것이며,
또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이지,
선악에 관계없이 권력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에게 두려운 것은 자신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것이지,
불의한 정부와 세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취급되는 상황이 아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선한 일을 하는가 악한 일을 하는가이다.
성도가 (자신이 저지른) 악한 일에 대하여 두려워하듯이
모든 사람은, 모든 권력과 정부는 만일 악을 행한다면 그것이 반드시 그들에게 두려움이 될 것이다.
선을 행하는 자는 떳떳하다.
악을 행하는 자는 힘이 있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공정하시고 절대적인 주권을 분명히 믿는다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국가적 사안과 정치적 행태들을 세상의 누구보다 더 성숙하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에서 그 모든 것이 상대화될 것을 알므로 오히려 이견을 존중하고 관용할 수 있다.
─ 사실 오늘날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정치는 정의와 불의로 명확히 나누기 어려운 주관적인 사안이 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다른 사람에게는 불의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행하는 것이 성도의 사회적 목적이다.

나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다.
나는 이견에 대해 마음이 넓지 못하며 그것은 선을 정말로 사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내가 행하는 악한 일에 대해 정말로 두려워하는가?
사회적인 고립이나 오해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워하지는 않는가?
나는 사회의 악을 두려워하는가, 내가 행하는 악을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은 사회의 악에 의해 당한 자를 보호하시므로 그것이 두려움이 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바로 똑같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은 내가 저지르는 악에 나의 책임을 물으시며,
나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를 신원하심으로 나를 두렵게 할 것이다.
진실로 두려운 것이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