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1-12, 말과 행위)

예수님께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등 당시의 지도자들이 질문한 것에 대답하신 뒤에
그들과의 논쟁을 정리하셨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총평이었다.
사실은 그들에 대한 판단이며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었다.

“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신랄한 말씀은 사실 예수님께서 많이 봐주신 말씀이다.
그들은 말조차 문제가 있는 자들이다.
늘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지 진정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진실하지 않았고 잘못된 말을 많이 하였다.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아,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으로 두려운 책망이다.
왜 두렵냐면 하나님은 말과 행위의 일치를 보시며,
나는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말만 중시한다.
그들은 말만 그럴싸하면 된다.
그들은 하나님이 행위를 보지 않고 말만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권위를 독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고자” 행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이 볼 때와 보지 않을 때 행위가 다른 자들이다.
그들이 섬기며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건이 아니라 경건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선생 대접을 받으려 하고 경건한 자의 권위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 목적은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잘 했으므로 그들은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고
“랍비”라는 칭호를 들었다.
그들은 성공했다.
그들의 하나님은 결국 사람이었고 사람에게서 그러한 인정을 받았으니
그들은 성공한 자 아닌가!
그들은 이것을 성공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그 성공에서 자신의 권위를 확인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보이고 안 보이는 것으로 속으시는 분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속과 겉이 다른 것이 다 드러나며
위선자인 것이 다 밝혀지며
선생은커녕 성도도 못 되는 것으로 판명된다.
그들의 신인 사람들은 그들을 높였지만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신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인간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다.
심지어는 신앙의 연륜이 오랠수록 이 문제에 더 사로잡힌다.
교회에 오래 다녀도 말은 많아지고 행위는 그와 다르다.
말만 잘 하고 말한 것을 행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은 행하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지만,
오늘날 세상은 교인들에 대하여 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인들은 바른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말은 그럴싸해도 행위가 너무 다르므로 아예 말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들으려 하지 않는다.
바리새인은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얻고 선생으로 높임 받는 데 그나마 성공하였지만,
오늘날 한국의 교회와 교인은 사람에게조차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물며 하나님께는 어떤 평가를 받겠는가!

한국 교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는 바리새인보다도 못하다!
나의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으며 진실하지 않다.
아, 참으로 죄송하고 부끄럽게도 나의 묵상과 나의 삶은 하나가 아니다.
나의 묵상은 생각과 말뿐이다!
나는 혹 길게 묵상하였어도 그것을 금방 잊어버리고 하루의 생각을 지배하지 못한다.

바리새인을 책망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나를 꾸짖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