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13-21, 빈들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이 죽임당한 소식을 예수님께 알렸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들으시고” 무리를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셨다.
예수님은 요한을 애도하며 당신도 맞게 될 대속의 죽음에 준비하시기 위해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셨을 것이다.

“빈들”.
예수님도 빈들을 필요로 하셨다.
예수님은 자주, 특히 밤중에 빈들에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셨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아버지)과의 교제를 위해,
그리고 특별히 중대한 결정이나 사안이 있을 때 그러한 시간을 가지셨다.

예수님도 빈들의 시간을 가지셨다면
하물며 우리는 얼마나 그 시간이 필요한가.
사람들과 일상을 떠나서 따로 빈들에서 하나님과만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매일 그러한 시간을 가진 자는 얼마나 복된가.

그러나 예수님의 계획은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오고 있는 무리들에 의해 변경되어야 했다.
물론 예수님은 무리를 물리치시고 빈들에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순간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다.

“빈들”은 어디인가?
물리적인 환경이 조용하고 사람들이 없는 곳,
그리하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곳, 빈들은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매일 산속으로, 광야로 가야 하는가?
그런 곳에 산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
그러면 빈들은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이 많은 가운데도, 일상의 현장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는 집중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거기가 빈들이다.
바울이 말한바 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는 자는 하루 종일 빈들에 있는 것이다.
다윗이 말한 대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어디서나 빈들에 있는 자이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어느 빈들로 가지는 못하셨지만
불쌍한 무리들을 위해 발걸음을 돌리시며
그 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써 빈들에 계시다.

제자들에게 빈들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교제하는 풍성한 자리가 아니라
모든 것이 결핍된, 그래서 먹을 것과 잘 곳을 위해 다른 데로 떠나야 할 지역이다.
제자들은 빈들에는 있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지금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 말씀을 들으며
오랜 시간 빈들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 걱정스럽다.
빈들에는 이들에게 먹고 재울 삶의 필수적 조건이 결핍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집으로 보내든지 마을로 가서 먹여야 한다.

이 빈들에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빵 없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충만하여 조용하고 풍성한 시간을 지내고 있는데,
제자들은 빵 걱정으로 마음이 시끄럽고 그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이 걱정이 된다.
그들은 물리적인 환경으로서는 빈들이 아니어도
영적 환경으로는 빈들에 있으면서 이 빈들의 영적 충만함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
또한 여기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계시므로
(이제 조금 후면)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듯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실 것인데,
제자들은 도회지의 풍성함과 거부의 호의만을 계산하고 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영적으로 빈들이다.
거기서 영적 풍요가 넘친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라면 물리적으로도 이미 풍성한 곳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필요(“일용할 양식”)를 채워주신다.
만일 당장 필요한 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미 채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풍부와 결핍, 모두를 상대화시키신다.
예수님께는 빈들도 에덴동산이다.
어떤 때는 빈들이 에덴동산인 때도 있다.
빈들은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