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1:1-13, 주께서 나를 기뻐하십니다)

시인은 복잡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는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이다.
그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시를 시작할 때,
그것은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선한 일을 하면서도 “재앙의 날”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절대로 필요한 자이다.

그는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그의 병상에 찾아온 사람은 치료하는 의료진이 아니라 “원수”다!
원수가 병상에 있는 그에 “대하여 악담하”는데,
“그가 어느 때에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고 환자의 속을 뒤집는다.
그 원수는 “중심에 악”을 가득 쌓아두고는 나가서
사람들 앞에 이 의로운 환자에 대해 악담을 퍼뜨리고 다닌다.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는 그를 “미워하는” 데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고 신나게 떠든다.
그 가운데는 심지어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다.(배신했다.)

그런데 원수가 그를 괴롭히는 데에는 한 가지 빌미가 있는데,
그가 “주께 범죄”한 사실이다.
그것은 그에게 가장 큰 괴로움이었다.
그는 원수와 원수가 된 친구들의 조롱과 저주보다 하나님께 지은 죄가 너무 괴롭다.
사실은 그 때문에 병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의 기도는 무엇인가?
회개가 우선이다.
그는 죄를 먼저 고백한다.
그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그것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문제에서 분연히 일어선다.
원수에 대적하기 위해 오기를 발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죄의 고백으로 그의 병은 고쳐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그는 원수가 그를 이기지 못하는 것을 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는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의롭게 살기도 했지만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원수에 둘려 있다.
그는 성도로서 아무 덕을 세우는 것 같지 못하고, 원수에게 패배한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자 그는 자신이 이긴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남은 것(시)은, 이제 찬양이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그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시인의 상황은 성도가 일반적으로 직면하는 상황이다.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지만 하나님(과 사람)께 죄를 지으며, 원수의 대적에 직면한다.
성도의 일상이 대체로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께 회개하므로 은혜를 입고
무엇보다 그가 하나님께 (죄로 인해, 원수의 대적으로 인해)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
아니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시는 자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기쁨이다!
이게 성도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