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3:18-34:7, 평안히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야곱은 에서와 헤어진 뒤에 숙곳에 자기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다.
에서를 만나는 일로 진력을 쏟았기 때문일까?
야곱은 에서가 세일로 돌아가자마자 집을 짓는 일을 먼저 하였다.
숙곳은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의 요단 동편 마을이다.
야곱은 일단 쉬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숙곳에 상주할 것은 아니었다.
그가 지은 집은 임시거처였다.
그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로 이른 땅, 이삭이 아직도 살고 있는 땅,
가나안이 야곱의 목적지이다.
그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나님은 지시하셨고 야곱은 순종하여 여기까지 왔다.
야곱은 “평안히 가나안 땅 ··· 에 이르”렀다!
드디어 목적지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가나안은 마을이나 도시 이름이 아니다.
가나안은 꽤 넓은 지역이고 그 안에 그가 머물 곳은 또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야곱은 “세겜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거기에 제단을 쌓”았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100년도 더 전에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와서
처음으로 세겜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것을 그대로 따라 한 행위였다.
그때 하나님은 바로 세겜에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셨다.

그러므로 야곱은 세겜이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땅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세겜에 장막을 치고 제단을 쌓았을 뿐 아니라 거기서 땅을 샀다.
땅의 매입은 전적으로 정착을 의미하는 행위다.
야곱은 정말로 세겜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이끄시는 종착점으로 생각한 것일까?

세겜 말고도 중요한 마을들이 또 있었다.
야곱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는 벧엘이었다.
거기서 가나안을 떠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고 그를 축복하셨다.
벧엘은 야곱에게는 언약의 장소다.
20년 뒤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도 하나님은 벧엘에서의 언약을 상기시키셨다.
벧엘 말고도 헤브론이 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땅을 사 사라의 장지로 삼았고 이삭이 현재까지 머무는 곳이다.
야곱이 세겜에 땅을 살 필요가 있었을까?
이에 대해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이 세겜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안 있어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라고 명하신다.
세겜이 최종 정착지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야곱이 거기에 땅을 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성경은 야곱이 세겜에 이르렀을 때,
그가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렀다고 기록한다.
적어도 가나안의 첫 성읍인 세겜에까지 야곱은 “평안히” 이르렀다.
하란에서 가나안까지의 그 먼 길에서 야곱 일행은 어려움 없이 “평안히” 인도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곱을 가장 불안케 하였던 에서와의 만남도 평화롭게 해결되었다.
보복이나 도피가 아니라 아름다운 화해가 있었다.
이 “평안”한 가나안 도착은 그러나 곧 비극으로 얼룩진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땅 추장의 아들에게 욕보인 것이다.
일이 잘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불행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평안히” 도착하여 드디어 정착할 생각까지 하고 땅도 사고 하나님께 예배도 드렸는데
더 이상 그 땅에 살지 못할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야곱이 사지 말아야 할 땅을 산 것인지,
그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성급하게 결정한 것인지,
땅을 삼으로써 결국 하나님을 불신한 것인지,
이에 대해 성경은 침묵한다.
불행한 일이 꼭 이유가 있고, 특히 무엇인가 잘못을 한 뒤에 벌의 형태로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적어도 본문의 이 사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디나의 강간이 야곱 집안의 어떤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인지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야곱이 하필 세겜에 땅을 샀는지,
그가 거기에 왜 정착하려 했는지,
디나는 왜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는지를 굳이 알아볼 필요는 없다.
만일 정말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면 성경에 반드시 그에 대해 기록하였을 것이다.
비극은, 불행은,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은 근본적으로 타락한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어느 때고 일어날 수 있다.
“평안히” 가나안에 들어온 직후에라도 불행은 벌어질 수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면 이 땅에서도 아무런 재난을 만나지 않도록 특수한 방패막을 그들 주위에 펴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영원한 천국과 같게 변화시키지 않으셨다.
“평안히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인간의 범죄에 의한 비극은 벌어질 수 있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은
그러한 재난이 전혀 벌어지지 않도록 무슨 수를 써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받아 그 사건에 함몰되지 않고 인내하고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룬다는 의미다.
“평안히 가나안 땅”에 이른 뒤에 벌어진 디나 겁탈 사건은
야곱과 그의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그것은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