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 교회 글방이 열리지 않았어요. 이제야 올립니다.

(역대하 35:1-19, 매일 요시야!)

히스기야 왕이 유월절을 복구하고 그가 죽을 때까지 그것이 지켜졌다면,
요시야 왕 때 유월절이 거행된 것은 75년만일 것이다.
므낫세 55년, 아몬 2년 동안 유월절은 잊혔고,
요시야도 제18년이 되어서야 이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히스기야 왕에 의해 유월절이 회복될 때에 비록 한 달 늦게 지켜졌지만
너무 감사하여 일주일 연장을 하였고,
유월절 이후에도 그 개혁이 지속적으로 되도록 구체적인 조처와 훈련이 실시되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다음 세대, 그 다음 왕에게로 전수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요시야의 때에 이르러서야 다시 유월절이 준행된 것이다.

요시야의 개혁은 점진적이요 단계적이었다.
그는 재위 8년에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고,
제12년에 “유다와 이스라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였다.
그리고 제18년에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였다.
성전 수리는 “율법책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책”의 발견이 아니라 “율법의 말씀을 듣”는 것과
“옷을 찢”는 회개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왕의 개혁은 동역을 통해 민족적 차원의 개혁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유월절 준수의 열매를 맺었다.

사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의 시작점이다.
그것은 애굽에서 해방된 완성이요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시작이었다.
이 시작과 기초가 그동안 간과되었던 것이다.
유월절이 없이는 이스라엘일 수 없었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애굽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 된다.
히스기야 이후로 유다는 다시 애굽으로 기어들어간 셈이었다.

유월절은 맨 처음에도 축제였고 그 이후도 언제나 잔치다.
유월절은 고행하는 날이 아니라 감사하고 감격하는 날이다.
한 가족이 양(염소) 한 마리를 배부르게 먹는 잔치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는 죽음을 이스라엘에는 생명을 주신 것을 찬양하는 절기다.

물론 유월절에 양의 피가 문설주에 칠해졌으므로
그 날은 대속의 날이요,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날이다.
그리하여 유월절의 제물은 1년 된 수양(수염소)이다.
그리고 다음 한 주간 무교병을 먹으며 무교절을 지킨다.
그런데 요시야는 이 때 “어린 양과 어린 염소”와 더불어
“수소”를 백성들에게 내놓았다.
그것도 “유월절 제물”이라고 했다.(백성들에게 3000 마리, 제사장들을 위해 300 마리, 레위인을 위해 500 마리!)

수소는 원래 번제와 화목제의 제물이다.
아마 요시야는 양과 염소로 드리는 유월절 제물과 함께
더 감사하고 더 회개하고 더 헌신하기 위한 제물을 드렸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대대적인 축제로서 유월절 본래의 감사제의 의미를 충분히 이루었을 것이다.
제물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개와 감사와 기쁨과 헌신이 중요하다.
요시야 때의 유월절은 이러한 의미에서 유월절의 회복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75년만의 유월절이 아니다.
거의 5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소요된 것이다.
매년 지키도록 그렇게 강조되었던 규정이 제 때에 지켜지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하루하루의 말씀묵상이 이어지지 않으면
일주일, 한 달, 그러다가 평생 혹은 다음의 수 세대를 걸쳐 말씀이 간과된다.
그렇다면 나는 500년만에, 혹은 75년만에 요시야가 아니라,
매일 요시야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