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6:1-14, 주 밖으로의 비극)

아사 왕은 앞의 왕들 누구보다도 오래 통치하였다.
41년.
그는 하나님을 찾는 자였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그것을 더욱 북돋우셨다.
선지자가 하나님을 “찾으면”이라고 하였더니,
그는 하나님을 “찾았으므로”로 화답한 자이다.

그는 35년 동안 그렇게 하였다.
만일 그의 재위가 35년이었다면 그는 참으로 행복한 왕이었을 것이다.
그는 불행하게도 6년을 더 통치하였고
그 기간 동안 35년간의 공든 탑을 무너뜨렸다.

물론 그가 오래 통치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 같은 자리에 오래 있으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끝까지 신실하게 믿음의 자리를 지켰다면
그는 마지막 6년도 신앙적으로 올바른 왕의 길을 갔을 것이고,
아마도 그 통치기간이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찾았던 왕, 그가 말년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가 찾은 것은 국제적 원조였다.
이스라엘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아람 왕의 시혜를 빌었다.
아람이 이스라엘과 맺었던 기존의 약조를 깨뜨리고
유다를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는 구스의 백만 군대 앞에서도 하나님을 찾았던 자이다.
그때 그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다고 고백하였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의 침입 앞에서
하나님이 그의 입에서, 그의 마음에서 사라졌다.
그에게는 이제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생겼다.
주는 필요 없다.
도움은 주 밖에 있다.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찾는 자는
어쩌다 한 번, 필요할 때면 여러 가지 대안 중에 하나로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대안 중에 하나가 아니다.
“주 밖에는 도와줄 이가 없”다.
“주밖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는다.
“주 밖에” 있는 것은 사람이요, 나라요, 세상일 뿐이다.
그것은 한시적인 존재요, 더구나 모두 죄에 속한 존재이다.
그것은 죄인을 구원하지 못한다.
주 안에만 구원이 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전심으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온갖 정성과 별의 별 궁상을 다 떨어야 하나님이 도와줄까말까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작은 신음’소리에도 응답하신다.
몸에 칼을 대며 몇 시간을 부르짖는다고 그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단 한마디의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면 “전심으로”란 오로지 하나님께만이다.
하나님만 찾는 것이다.
“주 밖에” 기웃거리는 것은 전심이 아니다.
그러한 지극히 부분적인 종교놀음에 하나님님은 속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아사를 참 많이 사랑하셨다.
많이 봐주셨다.
하나님을 찾던 그가 말년에 “주 밖”으로 나가자
하나님은 선지자 하나니를 통하여 그를 일깨우셨다.
아, 그것은 그가 돌이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36년째의 실수를 그는 다시 만회하고 그 다음 남은 재위 기간을 하나님 안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완악했다.
그는 선지자를 옥에 가두었고, 백성들을 학대하기도 하였다.
그는 끝내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하나님의 벌을 받아 몸이 아픈 중에도 그러했다.
그는 여전히 “주 밖에”서 도움을 찾았다.
그렇게 그의 마지막 6년은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나님 찾는 것을 중단하는 순간 그는 “주 밖에” 있었다.
거기에는 아무런 도움이 없다.
그러니 “전심으로”(=하나님만, 주 안에만)가 얼마나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