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0:1-19,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솔로몬에 이어 르호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
솔로몬은 왕국을 화려하게 번성시켰지만 백성들은 지쳐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솔로몬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 부담은 백성들이 지고 있었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전가되었다.

르호보암은 지혜롭지 못했다.
솔로몬은 시도 쓰고 지식을 자랑하고 특히 잠언도 썼지만
가정교육은 잘 시키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잠언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함을 솔로몬은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며, 그것이 제일 되는 기도제목이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렇지 않았다.

백성들의 원망을 해결하기 위해
르호보암은 여러 부류의 신하들의 견해를 듣는 데까지는 나아갔다.
그러나 그것을 종합하여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지혜가 부족했다.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어야 한다.
사실 그는 신하들보다 하나님께 먼저 물었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르호보암 주위의 신하들에게는 다 문제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원로들”의 말이 지당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선왕을 모셨던 자로서 선왕이 결국 잘못되는 것을 바로 잡지 못했다.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한 말을 솔로몬에게 진언했어야 한다.
어쩌면 이들의 말을 솔로몬이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왕의 변질을 바로 고치기에 신하들의 능력이 크게 부족했던 것은 틀림없다.

“젊은 신하들”은 방자했다.
그들은 솔로몬의 폭정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이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의 심각한 의미를 간과하고 우습게 알았다.
그들은 그저 원로들과 힘겨루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결국 왕이 백성들에게 “포학한 말로 대답”하게 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중 북쪽 열 지파가 돌아섰다.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정확히 헤아릴 때 맞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다윗과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르호보암과 문제가 있다.
그들은 ‘우리가 르호보암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고 반문했어야 한다.

다윗은 이스라엘과 유다 역대 왕들의 판단 기준이 될 자이다.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의 역사는 평가될 것이다.
그러한 다윗과 상관이 없다는 뜻은,
결국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길로 간다.
그들은 르호보암과 다윗을 구분했어야 한다.
그들은 “다윗”의 이름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솔로몬과 르호보암을 헤아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