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14-28, 창조의 목적)

어제의 본문은 가장 중요한 두 문제를 말하였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나(인간)는 누구인가?
답은 명확하다.
하나님은 선하신 창조주이시다.
나는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택하신 보배롭고 존귀한 자이다.

이 두 가지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면
마치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나(인간)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창조하셨다.
그 말은 맞지만 내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내가 창조된 목적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이 백성은 내가 나(하나님)를 위하여 지었”다고 단언하신다.

하나님을 오로지 관대하기만 한 무간섭자로 여기기를 원하는 세상뿐 아니라,
교인들 가운데도 하나님보다도 자신의 치유나 자긍심의 회복이나
긍정적 자아상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오늘날 매우 크다.
이사야의 글에서 하나님의 눈에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하다고 하는 단어만을 택하여
나를 극대화하고, 심지어 나를 위한 세상,
나를 위한 하나님을 상정하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나에게 있지 않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나를 만드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나(만물)를 창조하셨다.
그러면 창조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의 잘 됨, 나의 실현, 나의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의 존재 목적이 여기에 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자이다!

이것은 바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찬송할 때
비로소 보배롭고 존귀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이 왜 보배롭고 존귀한가?
인간 자신에게 그 이유가 있지 않다.
인간은 만들어진 자이다.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드신,
그리하여 그것을 이뤄야 하는 자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만들어졌고,
그것이 곧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만들어진 목적이며,
그때 인간은 창조의 목적을 이루므로 보배롭고 존귀해진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게 여겼으며”
하나님을 “공경하지 아니”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만들어진 자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그의 존재 목적인데
자신이 그 목적이 되고 중심이 되려 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사랑과 의존을 변질시키고 최종적으로는 거부한다.

인간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이 자율적이시며 주체이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에 진노하시고 공의로 벌하기도 하시며,
또한 “허물을 도말”하시며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기도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사랑이시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유로움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빚진 것이 없으시다!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 때문이다.

나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내가 감격하여 경배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그 일을 제대로 못할 때
공의로운 하나님의 책망 앞에서
나는 머리를 조아리며 회개하고 긍휼을 간구할 것이다.
또한 나의 완악함과 연약함으로 나의 존재 목적을 이루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내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것에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송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목적을 이루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나의 오늘 하루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