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1:1-20, 버러지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통치는 특정 지역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유다)에서조차 실패하셨다고 조롱한다.
현대인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이 고안해낸 종교적 개념일 뿐
실제가 아니라고 떠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열방과 열국을 다스리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시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사람들에게 자동으로 감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담하게 하나님을 빼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민이 완전히 알 수 있게끔
세상 통치를 나타내 보이실 때가 올 것이다.
하나님의 세상 평정을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심판을 시행하실 때
그 날은 하나님 백성을 신원하시는 날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다.
이스라엘은 어떠했는가?
하나님께서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라고 부르신다.
이스라엘은 벌레와도 같았다.
벌레! 벌레는 일반적으로 해충이었고
그것은 사람들이 보자마자 발로 밟아 죽여 없앨 징그러운 유해요소요 쓰레기였다.
이스라엘이 그러했다.
그것은 아름답지 않았고, 추악했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실패자였다.
그것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나의 종”이라고 부르시고
도와주겠다고 하시고 세상을 심판하는 도구로 삼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귀한 존재다.
그는 더 이상 버러지가 아니다.

성도에게 나타나는 변화의 본질은 정체성의 변화다.
그는 죄인에서 의로운 자가 되고, 버러지에서 하나님의 종이 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우습게 여겨지던 자에서 세상을 타작(심판)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이 그렇게 변화시키시고 그를 그렇게 귀하게 사용하신다.

구원받은 성도가 자신을 아직도 버러지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지금 그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귀한 도구(동역자)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자신이 이전에 버러지였음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참으로 교만한 자이다.
교만은 결국 하나님을 필요 없다고 하고 자기 자랑에 빠지게 한다.
성도는 자신의 과거를 아는 자요 자신의 변화된 현재 신분을 아는 자이다.

나는 버러지였음을 기억하고 결코 교만할 수 없다.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으로 변화시켜 주신 자로서
하나님 일의 동역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