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2:18-32, 하나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사)

사무치는 죄로 인하여 마땅한 심판을 받을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통회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구원하신다.
이것이 성경의 복음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창세기 3장부터 이미 반복되고 강조되어왔다.
오늘의 본문도 그와 똑같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요한복음의 “이처럼”이 “극진히”로 표현 되었을 뿐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극진히”(=독생자를 보내실 정도로 이처럼) 사랑하신다.

이때 “그의 백성”은 하나님을 닮은 천사와 성인들이 아니다.
아, 그들은 죄인이다.
배은망덕하며 심지어 포도주에 취해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고난도의 기준과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다시 받아줄지 고려해보겠다고 하시지 않는다.
어떠한 선행도 고행도 요구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술 취한 이들을 흔들어 깨우고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있는지 설득시키신다.
계속해서 마음을 움직이시고 감화하신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녹이셨기에 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정도의 정성으로 그치지 않는다.
죄인들이 지은 죄는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처벌되어야 하며 공의롭게 심판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신 뒤에
징벌이 다 끝나면 사면하시는 것이 아니다.
죄의 값은 죄인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죄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치르신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선언하는 대로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극진”하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그 극진한 사랑은 심판을 면하고 구원받게 하심으로 완성된다.
하나님이 부르셨던 “북쪽 군대”를 “멀리 떠나게” 하시고 “쫓아내”신다.
하나님은 심판을 거두신다.
그리고 그 임박했던 심판의 상황에서 핍절하였던 모든 것을 채우신다.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셔서 백성을 “흡족”하게 하신다.
그뿐 아니다.
하나님의 회복은 “그의 백성”만이 아니라 “자기의 땅”에도 이른다.
모든 생태계와 환경이 회복된다.
“땅”, “들짐승”, “풀”, “나무”, “마당”, “독”이 회복된다.
황폐했던 모든 것이 풍성하게 채원진다.

그뿐 아니다.
하나님은 가장 중요하신 것을 하신다.
바로 “그의 백성”들의 “영”을 채워주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풍요한 생산지로 바꾸시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영으로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사람의 속, 그 내면의 중심인 영을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주신다.
그것도 충만하게 부어 주신다!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셨다.
회개가 집안의 청소라면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이 누가 그 집의 주인이 되는가라고.(마태복음 12:38-45)
회개한 심령에 성령이 충만히 거하신다.
빈집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참 주인의 집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이다.
이것이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구원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자이다.
내가 어떻게 함부로 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