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37-52, 배에서 흘러나오는 것)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은밀히” 가셨던 예수님은
이내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셨고,
명절 끝 날에는 “서서 외쳐 이르”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종용이나 위협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때”에 따라 움직이시고 멈추시고 사역하셨다.

예수님은 이미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의 떡”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초막절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셨다.
초막절 끝 날의 말씀은 이 말씀들의 결론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데,
그것은 단지 한 인간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죽음을 맛보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원히 주리지 않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다.
그에게 더욱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다.
그 안에 영생이 있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영생이 흘러넘친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생수, 곧 생명수가 그 속에서 밖으로 흘러나온다.
생명은 그를 살릴 뿐 아니라 주위의 죽은 것들도 살린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주변을 살리는 자이다.
그는 자신을 살린 믿음을 다른 사람도 갖게 하는 자이다.

본문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예수님을 믿는 자 안에 성령이 흘러넘치도록 충만하다.
성령은 예수님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성도 안에 충만히 거하신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의 신비의 연합을 믿는 자 안에서도 이루신다.
성령님은 “교통”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생명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은 곧 생명의 충만이다.
영생은 생명이 충만한 상태다.
그 충만한 생명은 흘러넘쳐 밖으로 흐른다.
이것은 지상에 사는 성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도는 죽음이 지배하는 땅 위에서 생명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자이다.
사람들이 남을 죽이는 말을 할 때 성도는 살리는 말을 한다.
자기 안을 충족시키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세상에서
움켜쥐지 않고 “배에서” “흘러나오”게 하는 자이다.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온통 경쟁의 구조 속에서
남을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자이다.
예수님이 이미 하신 것처럼
그렇게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자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의 배에서 흘러나올 생수의 강은
예수님의 배에서 먼저 흘러나왔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생명에 대해 말씀하시고
한 사람이라도 더 영생을 얻도록 끊임없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만 나오고 있다.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죽일 생각만 가득 차있다.
그들의 “배”에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충만한 것이다.
그들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죽음이다.
그것은 남을 죽이는 것이요,
그럼으로써 결국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예수님이 약속하신대로 예수님을 믿는 나의 배에는
생명이 있고 성령님이 계시다.
그러면 나는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 속에 성령이 충만한가?
그리고 밖으로 흘러넘치는가?
내가 머무른 자리, 내가 지나간 자리에 생명이 움트고 있는가?
그렇게 살라고 나를 부르셨고,
그것은 약속일 뿐 아니라 내 삶의 과제로 주신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