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묵상하는 가운데 계속 내 영혼을 울리는 한마디가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이다. 예수의 이름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내가 주목한 바는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정도이다.  그 외에 혹 내가 더 알고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 형이상학적이거나 내세적이거나 지적인 영역들에 국한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사도들과 성도들이 보여주는 예수의 이름은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은 권세였고 능력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고,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세상과 맞섰다. 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날 와서 우리를 보면 뭐라고 할까…

예수의 이름은 죽어서 천국갈 때만 사용하라고 주신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요 권세이다. 사도행전을 묵상하면 할수록 그것이 분명해진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이 말씀도 새롭게 조명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신다. 그 권세는 천국 가서는 필요없다. 이 세상에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권세이다. 마귀에게 눌린 자와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해주는데 필요한 것이 권세이다.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해주는데 필요한 것이 권세이다. 병든 자를 일으키는데 필요한 것이 권세이고, 귀신을 내어쫓는데 필요한 것이 권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용하라고 자녀들에게 권세를 주셨는데 우리는 나중에 천국 들어갈 때 입장권으로만 사용하려고 한다.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을 일으켰다. 그것은 엄청난 권세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자 그는 말한다. ‘왜 나를 주목하느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이름이 이 사람을 낫게 하였느니라’ 그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믿었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이름은 오늘날도 변함없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초대교회 때 사도들만 사용하라고 주신 이름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세대에서 사용하라고 주신 거룩한 이름이요 능력있는 이름이요 권세있는 이름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베드로의 이 외침을 기억하자! 이 말 또한 내세적인 의미가 아니다. 예수 믿어야 천국간다는 의미를 포함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는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사용해야 할 이름이다. 앉은뱅이가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았듯이, 오늘날도 절망 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이름도 오직 예수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예수의 이름으로 우울증 걸린 사람들을 구원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빚더미에 앉아 절망하는 사람을 구원해내야 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구원해야 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의 모든 결박을 풀고 사람들을 구원해내야 한다.

성령충만을 사모하자!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았을 때 그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믿음은 내가 만들어내는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이다. 권세에 대한 확신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믿음으로 세상 속으로 나아가라고 부름받았다. 그리고 마귀가 붙잡고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라고 부름받았다. 따라서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며 주를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믿음이 부은 바 될때까지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올 한 해 목표가 분명해졌다. 믿음이 생길 때까지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기도의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