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은 교회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한다. 진지하게 말씀을 묵상한다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꿈을 꾸게 한다. 현실 속의 교회와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교회의 차이점을 보면서, 무엇이 다른가, 왜 다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것이 정직한 반응이다. 올해에 들어서 늘 나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묻는다. 왜 다릅니까? 오늘날 현실속의 교회와 사도행전의 교회가 분명 다른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매일 묻는 질문이다.

지금까지 하나님께 받은 대답은 이렇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이고 오늘날 교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라는 점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능력이 많고 적음이 다르다. 즉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지만,능력적인 측면에서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왜 그러한 능력의 차이가 나는가? 그것은 교회가 주님의 뜻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오직 한 가지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령을 부으시는 이유도 오직 그 한 가지 이유이다. 따라서 교회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집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실 이유가 없으시다.

사마리아의 시몬이라는 마술사는 돈을 주고서라도 성령의 능력을 받기를 원했지만 그의 목적은 복음 전하여 영혼 구원하는데 있지 않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에서 성령을 구했기 때문에 베드로로부터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받았다.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 어쩌면 오늘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령충만을 구하지만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바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마음이 바르고 진실하다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바른 마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바른 마음일 것이다. 교회가 오직 그 마음으로 하나되고 합심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오늘도 기꺼이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이 더 원하시는 바일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신앙생활의 중심을 영혼구원에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지적하자면 마음이 바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바르지 못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 있다. 그 마음이 없다면 예배드리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무엇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모든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신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되게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권능이 임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교회이다. 따라서 그 꿈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성령은 초대교회와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임하실 것이고 사도행전의 역사는 계속해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마음이 우선이다. 마음이 바르고, 그 마음으로 하나 된다면,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능력있는 증인이 되게 하실 것이다. 전도는 그 뒤에 나타나는 열매이다. 우리가 성령받기도 전에 전도부터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시지 않는다. 전도에 대한 부담은 떨쳐버리고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품자. 그것이 사도행전적 교회의 출발이다.